100대 명산 여덟 번째
지난 6월에 내연산을 다녀온 이후론 한동안 등산을 하지 못했다. 발목을 다쳐 한참을 꼼짝 못 했고 또 나을만하니 이번엔 장경인대 쪽을 다치는 바람에 산을 걷기가 영 불편하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단풍이 지는 걸 지켜보고만 있기엔 너무 아쉬워 쌍둥이 누나들이랑 청송 주왕산을 다녀왔다.
비가 와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행히 많이 오진 않을 듯하여 계획대로 출발했다. 주왕산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붉은 단풍은 너무 이뻤고 앞으로 주왕산에 만날 단풍에 우리의 기대도 한껏 올라갔다. 새벽의 찬 기운과 한낮의 따끈따끈한 기운에 잔뜩 약이 오른 윗동네 단풍은 너무도 이쁘다.
11월 5일 아침 8시경 주왕산 상의주차장에 도착했을 무렵엔 비는 그쳤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구름 사이로 주왕산의 기암들이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큰누나가 준비해 온 깨죽을 주차장에 있는 데크에서 맛나게 먹었다. 그동안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몇 개 챙겨 얼요기만 하고 다니던 나로선 여간 호강이 아니었다.
내 배낭에 누나들이 점심으로 준비해 온 도시락이며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몽땅 넣고 우리는 출발했다. 처음 계획은 대전사를 지나 주왕산 주봉과 후리메기삼거리를 지나 주암계곡으로 내려올 참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고 환갑을 앞둔 누나들의 걸음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잘 알지 못해 주암계곡 쪽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날씨와 누나들의 컨디션을 봐가며 다시 내려오든지 괜찮다면 주봉으로 한 바퀴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주차장을 지나 길가에 늘어선 상점가에서는 벌써부터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내겐 이런 상점들이 그냥 거리 풍경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누나들에겐 여간 유혹이 아닌 듯하다. 여자들은 참 세상을 재미있게 산다. 그러지 못하게 생겨먹은 나로선 그저 부럽기만 하다.
요즘은 어느 사찰에 가더라도 입장료가 없다. 등산객들과 입장료 문제로 오랫동안 마찰이 있어왔었다. 몇 해 전 입장료를 받지 못하게 되자 절마다 내걸렸던 정치인들을 욕하는 현수막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입장료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문화재 관리 명목으로 산 입구에서 모든 등산객을 대상으로 받아오는 행위 자체는 썩 유쾌하진 않았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삼층석탑이 이곳 대전사 마당에도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절이 창건된 연대는 최소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혼자 왔다면 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겠지만 일행이 있어 절은 그냥 통과하는 길목정도로 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대전사를 지나 주암계곡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마라톤 출발선의 복잡함처럼 그저 앞사람 뒤통수만 쫓아 걷게 된다. 빨리 걷는 사람들이 모두 저만치 사라질 즈음 이마에 자갈을 잔뜩 뒤집어쓴 바위 하나가 혼자 계곡 가장자리에 서있는 것이 보인다. '아들바위'란다. 바위를 등지고 돌아서서 다리를 벌리고 왼손으로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이미 많은 돌멩이가 바위에 얹혀 있으니 저 수만큼 아들들을 낳았으리라. 그중엔 이미 늙어 죽은 아들도 있을 것이고 또 새로이 태어날 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세상은 순환한다.
주 계곡에서 0.2km 벗어난 거리에 연화굴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오르막으로 향해있는 연화굴을 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간다. 우리는 가을 낙엽이 쌓여있는 돌계단이 운치 있기도 하고 왕복해 봐야 500여 미터 이내일 듯하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돌계단은 가을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했고 조용하니 좋았다.
연화굴은 굴이라기 보단 바위 둘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서있는 형상이다. 굴 깊이가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만도 좋았다.
연화굴을 보고 내려오는 중에 밑에서 어떤 남자 한 명이 이리로 올라오고 있다. 보기에도 걸음에 확신 없어 보이더니 결국 나를 지나 조금 더 몇 걸음 올라가곤 이내 포기하고 내려온다. 내가 그에게 "왜 내려오느교. 조금만 더 가면 굴 나옵니다"하니 그는 다시 올라간다. 그 남자에게서 나를 본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백스텝을 밟을 준비를 하고 살았던 나. 언제까지 뒷걸음질만 칠 것인가.
연화굴을 뒤로하고 몇 걸음 옮기니 이번에는 깎아지른 바위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급수대 주상절리라 한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생겨난 것이라 하는데 제주도에 있는 주상절리는 이해가 쉽게 되지만 경주 양남 해변에 있는 주상절리도 그렇고 이곳 주왕산의 주상절리는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용암이 어디서 뿜어져 나왔단 말인가? 그럼, 분화구는 또 어디 있는지." 자연은 참 신묘하다.
급수대 주상절리를 지나면서부터는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곳 경치가 최고인가 보다. 학소교 뒤편에 사람얼굴을 한 바위가 홀로 우뚝 서있다. 이름은 시루봉인데 학소교 다리 위에선 영락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학소교를 건너 용추협곡 쪽에서 시루봉을 바라보니 이번엔 정말 떡시루를 쌓아 놓은 것 같다. 처음 이름 지은이는 떡을 무척 좋아했거나,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떡시루가 저만큼 쌓여있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 같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학이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학소대를 지나면 돌산 둘이 마주 서고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틈을 지나면 용추협곡이 나온다. 이 모두가 연방연방 나타나니 어찌 사람들이 몰리지 않겠는가.
자연이 만든 비경을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엔 '인간들아 너희들 삶이 나만큼 힘드냐!'는 듯 계곡 안에 질긴 삶을 이어가는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뿌리는 모진 물살에도 떠내려 가지 않으려 땅을 꽉 움켜잡고 앙상하게 서 있다.
"나무야! 주왕산 많고 많은 자리에서 큰비 오면 대책 없이 떠내려갈 일뿐인 그 자리에서 잘도 버텼구나."
이번엔 절구폭포를 보기 위해 주계곡에서 잠시 옆으로 빠져야 했다. 먼 곳까지 왔으니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고 가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절구폭포 이정표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망설인다.
이름처럼 절구통같이 속이 비었다. 한여름 수량이 많을 때면 득음하려는 명창이나 득도하려는 수행자는 저 절구통 같은 폭포 아래에 앉아보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낄 것 같다. 흘러내린 낙수만으로는 저 안이 저리 둥글게 깎이진 않았을 텐데. 참으로 신비하다.
절구폭포 구경을 마치고 우리가 가야 하는 후리메기삼거리로 가는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0.3km를 더 올라가면 용연폭포가 있다. 우리는 용연폭포를 보고 다시 후리메기입구로 내려오기로 하고 용연폭포로 향했다.
폭포는 2단으로 되어있어 한눈에 모두 담기가 쉽지 않다. 용연폭포 탐방로는 일방통행이다. 오던 길을 더 올라가 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구경하게 길이 만들어져 있다. 가끔씩 일방통행 안내판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역주행하기도 한다.
상단에 있는 폭포에는 좀 전의 절구폭포처럼 안으로 움푹 파인 동굴이 있다. 안내판에는 침식작용에 의해 발생되었노라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는다. 혹 강도가 다른 무언가가 박혀있다 그것을 붙잡고 있던 것이 침식으로 헐거워져 빠진 자리가 아닌가, 혹은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구멍이 생기고 구멍 주변이 침식되면서 세월이 흘러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본다.
아랫단 폭포는 흔히 보는 폭포의 모습이다. 다만 수량이 풍부할 때였다면 보는 이의 가슴이 시원했을 텐데. 내가 찾은 때는 단풍도 많이 떨어지고, 수량도 적은 시기라 조금 아쉽다.
우리는 용연폭포까지 탐방을 마치고 후리메기 입구로 다시 돌아와 후리메기 삼거리를 향해 걸었다. 지금부터는 사람들이 확 줄어든다. 한동안 앞뒤로 아무도 없이 우리 셋만 걸었다. 간간히 남아있는 단풍만이 늦은 우리를 맞아준다.
후리메기삼거리를 지나 칼등고개로 향하는 지점부터는 제법 등산하는 맛이 난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은 땀을 한줄금 나게도 한다. 앞에는 육십 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 둘이 쒹쒹대며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밖으로 들리게 크게 틀어놓은 음악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자기들은 듣기 좋은지 모르겠지만 내겐 영 고역이다. 산새소리, 바람소리, 자연의 소리가 듣고 싶어 찾은 산길에서 저런 사람을 만나면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혼자라면 서둘러 지나쳐 버리면 되겠지만 누나들과 함께 걷는 길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또 걸음의 속도도 우리와 비슷하여 주봉까지 가는 내내 그 역겨운 소리를 들으며 가야 했다.
주왕산 주봉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 찍는 게 등산하는 것 만치나 어렵다. 사람이나 산이나 유명해지면 편하게 만나기가 어려워지나 보다.
주봉을 지나 우리도 준비해 온 점심도 먹을 겸 적당한 자리를 찾으면서 하산을 시작했다. 빼꼼한 자리가 없다. 조금이라도 엉덩이를 붙일만한 자리는 전국각지에서 온 산악회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래도 어찌어찌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었다. 다 먹어갈 무렵 국립공원 관리를 하는 분들이 주변을 더럽히진 않았나 하고 보고 간다. 고생이 많은 분들이다. 저분들이 있어 관리가 잘 되는 것이겠다 싶다.
하산길은 데크계단으로 되어있어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계단 간격도 뭔가 이상하고 많이 힘들다. 우리가 후리메기 쪽에서 올라올 때 대전사 쪽에서 주봉으로 올라오는 것이 더 쉽다며 내려오는 사람들이 말하던데 내가 내려가면서 볼 땐 후리메기 쪽이 오르기가 더 쉬워 보인다. 계속되는 계단이 무릎에 무리를 많이 주었는지 안 좋았던 오른쪽 무릎 장경인대 쪽이 다시 아파온다. 반대쪽 다리에 체중을 더 의지해 내려오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젠 나이가 있어 그런가 한번 다친 게 좀처럼 잘 낳질 않는다.
우리가 올라올 때 감상했던 계곡의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쨍한 붉은 단풍이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우리는 하산했다.
주왕산 상의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대전사 주암계곡을 따라 용연폭포를 거쳐 후리메기삼거리, 주봉을 돌아 상의주차장으로 오는 원점회귀코스는 총 거리 약 12km, 소요시간은 휴식을 포함하여 약 6시간 정도 걸렸다.
마침 청송사과축제 마지막날이라 가는 길에 맛난 사과 한 박스도 싣고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