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것들이 기억이 남는 법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워 가더라도 심심찮은 변수가 생기는 것이 여행이다. 찾아 놓은 식당이 문을 닫는다든가, 너무 줄이 길어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하는. (잘 먹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근처에 또 다른 식당을 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으로 느껴진다. 진짜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여행 3일째에 마주한 변수는 ‘고립’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씻고 돌아온 친구가 눈발이 날린다고 알려주었다. 커튼을 열어보니 얇은 눈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것 또한 낭만이구나, 싶었다. 잔뜩 들떠서 다 같이 창문 너머의 눈발을 감상하며 수다를 떨었다. 밤새 눈이 조금씩 왔는지 아침에 일어나 확인하니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직원이 뭘 타고 왔는지 물었다. (우리는 2일 동안 무제한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패스권을 구매했다. 후쿠오카시로 돌아갈 때 역시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밤사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고속도로가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젓가락을 든 채로 멈췄다. 사고가 정지되었다. 그러더니 후쿠오카시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는 게 아닌가. 2시간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는 것보다 더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은 귀여울 정도로 쌓인 눈에 고속도로가 통제되었다는 것이었다. 직원은 더 알아보겠다며 떠났다.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셋 중 누구도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사실 오히려 들떴다. 기다렸던 고난이 왔구나 하고. 아마도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이쯤은 별 거 아니게 된 것이다. 누구는 여행을 한순간의 쾌락이라고 말하지만, 이렇듯 나의 여행은 돌발적인 고난에 면역이 생기는 과정이다. 변수와 고난이라는 바이러스의 침투는 필연적으로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지난 고난보다 더 성장한 면역을 가지고 있을 이번 고난에서 한층 더 무심하게 대처한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 아니던가. 이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영원히 여행을 할 것이다. 일부러 고난을 마주하기 위해서.
(후일담: 직원은 아마 기차도 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일단 기차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기차가 운행을 하고 있어서 무사히 후쿠오카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성장의 대가로 6만 원을 지불했다. 이 정도면 싼 값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