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건, 오직 쑥스러움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독한 쑥스러움에 실망했던 적이 있다.
나는 언제나 S를 시니컬하다고 표현한다. 무뚝뚝함에서 오는 다정이 좋았다. S의 시니컬은 온전히 긍정의 단어로 쓰인다. 사실 이 표현은 S의 귀여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기도 하다. S는 사실 엄청 귀엽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질 때, S는 언제나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다. 그럼 나는 더 크게 손을 펄럭펄럭 흔들었다. 내 마음은 이마아아안큼이나 크다고 말하기 위해서. 하지만 S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손을 흔들어주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더 크다고 우길지언정, S보다 진득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살랑이는 손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주 만났고, 그래서 금방 또 만날 거라고 생각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가끔은 그때가 언제였을까, 골똘히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저 멀리서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S가 떠올라서 마음이 기쁘다가 슬프다가 한다.
기쁘기보다 슬픈 마음이 더 커서, 내내 삼켰던 사랑한다는 말을 후회하게 된다. 표현에 인색한 나를. 어쩌면 S는 이런 나를 제일 잘 이해해 줄지도 모르겠다. S와 내가 닮은 점이기도 하니까.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망설임 없이 연습해 둔 말을 전해야겠다.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사랑을 담아,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