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의 나는 마음의 틈이 없었다.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 말고는 그 누구도 마음 한 켠에 자리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첫인상에 판단하고 단정 짓기 바빴다. 20살의 판독기는 자꾸만 오류를 냈다. 열에 아홉은 틀렸을 것이다. 입체적인 사람을 어떻게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겠냐마는, 그때의 나는 그랬다. 다행인 것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판독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아니 원래 첫인상 판독기 따위는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사람이 있다.
J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슈퍼긍정이다. 불가능이란 없는 사람처럼 군다. 옆에 있던 나는 덩달아 응원과 칭찬을 가득 불어넣은 커다란 풍선을 날마다 선물 받았다. J는 처음부터 그랬다. 꾸밈없이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그때 검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는 J를 엄청 의심했다. 세상에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질투도 났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J를 질투할 동안 나를 성실히 아껴줬다. 그렇게 부피를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풍선이 성실히 쌓여, 나를 두둥실 떠오르게 했다. 비로소 검은 마음에서 빠져나와 J를 마주했다.
J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한 편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대면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 꼬박 5년을 한결같아서 곁에 있는 사람도 불가능이란 없는 사람처럼 만들어주는 사람. 나를 이루고 있는 J에 비하면 작디작은 풍선으로 갚아 나가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커다란 숨을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 기꺼이 사랑하고 있다. 그럼 그 사람도 더 큰 숨을 가지게 되겠지. 언젠가 우리의 알록달록한 풍선을 모아 다 함께 검은 마음으로부터 힘차게 떠오를 날을 기대한다.
무한히 아끼는 J에게, 사랑을 담아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