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소음도 존재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K와 내가 공원 벤치에 누워 그저 사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이 그렇다. 할 일이 너무 많은 우리는 공원으로 향한다. 너무 많은 할 일들이 새끼 오리처럼 졸졸 따라온다. 우리가 가는 공원은 너무 무거운 것들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잠시 입구에 묶어둔다. 아무도 없는 평일의 공원은 기다란 벤치 하나를 오롯이 누릴 수 있다. 그렇게 마주 본 벤치에 나란히 눕는다.
지난 몇 년 동안 반복했던 이야기, 며칠 전의 이야기, 어제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생각나는 대로 주제를 바꿔가며 신나게도 대화를 나눈다. 굳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로, 여린 잎을 스쳐가는 바람을 느끼면서. 매일 불안을 여실히 느끼면서도 새까맣게 잊은 채로 바쁘게 떠든다. 그럼 신기하게도 짤랑이는 슈퍼 종소리나 골목을 쏘다니는 오토바이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끊임없는 말소리로 움막이 자라나는지도 모르겠다. K와 짓는 움막은 거대한 뼈대가 있다.
K와의 대화 속에서 서핑을 탄다. 그렇게 파도를 자꾸만 마주한다. 잔잔하다가도 불현듯 높아지는 알 수 없는 파도들. 옆에서 K는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소리치고, 나는 두렵다가도 파도에 올라탄다. 그렇게 차례를 바꿔가며 파도를 타다 보면 즐기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이 온다. 그제야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다. 가장 충만한 마음이 들 때 서둘러 일으킨다. 거침없이 불어나는 새끼오리들의 양육자가 기꺼이 되기로 한다. 우리 다음에는 조금 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조금 더 높은 파도를 타보자고,
여름의 직전에서 약속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K의 생일이에요. 지난 늦 봄, K와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 ‘지금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K에게는 확실한 말로 응원과 용기를 주는 힘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