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를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은 조금 특이해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잔뜩 굳은 표정의 H는 소리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온 무리들을 지휘하기 위함이었다. 수십 개의 그릇들을 옮기는 작업이었다. 떨어뜨리면 깨지는 연약한 그릇들을 중학교를 입학한 첫날의 연약한 아이들이 옮기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H의 카리스마에 무겁지도 않은 그릇을 더욱 꼬옥 쥐고 이동했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은 일어난다. 그릇이 깨졌다. 복도를 따라 줄지어 움직이던 아이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속으로는 다들 이렇게 생각했겠지. ‘쟤는 죽었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는데, H의 반응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잘했다고 했다. 그 말투와 눈빛이 오히려 그 애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호랑이 같던 H의 첫인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 알게 된 사실로, H는 호랑이보다는 토끼에 가깝다. 3년을 내리 H에게 배웠다. 그러고도 7년이 지났지만, H는 나에게 여전히 각별한 존재이다.
H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가족 말고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니. 가족 이외에 이렇게 사랑받을 곳이 있다니. 나의 어떤 밑바닥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한다. 그럼 H는 내 말을 들으면서 반짝이는 마음으로 갈아 끼운다. 일부러 웃기고 우스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별 것 아닌 것들이 정말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알려준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에는 무지 크고 확고한 것을 투척한다. 불꽃놀이처럼 무지 크고 반짝이는 덕분에 한동안은 절대로 어둠이 내려앉지 못한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H,
전화 끝에는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H.
그럼 나는 저도요. 하고 쑥스럽게 답한다.
그래도 아무렴 괜찮은 H를 가득 반짝일 바다에서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