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느끼는 설렘에는 J가 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해외여행은 신기함보다 두려움에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반짝이는 에펠타워 앞으로는 센강이 흐르고, 가로등이 켜지면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파리에서, 나만 빠진 낭만 속을 외롭게 걸어 다녔다. 그럼에도 나에게 여전히 파리가 그리운 것은 J를 만났기 때문이다. J를 만난 하룻밤 동안 10일 치의 낭만이 쌓였다.
J는 거침없는 성격을 가졌다. 그는 한인민박의 같은 투숙객이었는데, 처음 인사를 나누자마자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때의 나는 너무 많은 쑥스러움으로 범벅되어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진짜로 같이 놀 생각은 없었다. 일부러 저녁 즈음 마트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이미 없겠지, 싶었다. 비닐봉지 달라는 말을 못 해서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때마침 숙소로 돌아온 J가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가자는 말에 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하룻밤 만난 J는 내가 너무나도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J가 너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끄덕여진 고개가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J는 딱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무모하게 사는 사람. 사실 그렇게 무모한 사람을 실제로 처음 봤다. 원하는 게 있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일단 한다. 그렇게 교환학생을 왔고, 여행을 떠나서 우리가 만난 것이기도 했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를 보듯 J의 이야기를 들었다. 밤이 깊어지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날 각자의 여행지로 떠났지만 결국 나의 파리는 J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혼자서 낯선 곳을 여행해도 더 이상 두려움에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그때보다 덜 쑥스러워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이렇게나 달라졌지만 공항을 가면 언제나 J가 떠오른다. 여행의 시작과도 같은 J. 덕분에 내 여행은 조금 더 무모해진다.
J,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