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나만의 속도를 찾다
사람마다 한걸음의 차이는 얼마나 날까. 그것이 천 걸음이 되었을 때는 어떨까. 그리고 만약 그 걸음들이 모여 만 걸음을 이룬다면, 그 격차는 얼마나 커질까. 어쩌면 완전히 다른 공간,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재탄생하는 건 아닐까.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했다. 이는 1만 시간 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다.
나는 수영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특히 꾸준히 한 일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수영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에게는 ‘한 번에 1,000m 돌기’라는 목표가 있었다. 물속 호흡이 트이지 않은 초보자에게 그건 쉬운 지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열정의 불쏘시개로는 충분한 듯했다. 한 육 개월쯤 되었을까, 물속인데도 별안간 몸이 가볍고 숨이 편한 상태가 되었다. 몇 개월을 매일 나가 연습해도 좀처럼 늘지 않던 실력에 실망하려던 찰나에 성장을 불쑥 경험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레인을 열 바퀴고 스무 바퀴고 어렵지 않게 돌 수 있었다.
이처럼 꾸준함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내 수영 실력이 어느 한순간에 눈에 띄는 변환점을 맞은 것처럼, 꾸준히 행하면 그런 순간은 반드시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이 한 분야에 10년을 투자한다면, 그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임이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방향을 설정하는 일. 이는 시간을 무작정 투자하기에 앞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내가 수영을 배우면서 갖게 된 1,000m 목표처럼, 언제나 단순하게 정해진 목표가 내 앞에 생겨주면 좋으련만, 인생은 왜인지 좀처럼 단순하지 않다. 특히나 목표 설정과 같은 일은 마치 보편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개인적이고 세밀한 작업이다. 사회가 갖는 보편화된 관점으로 목표를 세웠다가는 자칫 불행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탈 가능성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모범생이었던 나야말로 사회가 흔히 들려주는 보편적인 이야기에 따라 살아왔다.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안정적으로 사는 일에, 사는 동안의 전 에너지를 바쳤으니 말이다. 나는 누구에게 한 번도 반항한 적 없고, 주어진 길에서 이탈한 적도 없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고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선택이 잘못되어 왔음을 직감했다. 그건 마음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로 드러났다.
남들에게 좋아 보인들 그게 도통 무슨 소용이냐고,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아우성쳤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그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던 내 입에서 불쑥 ‘이렇게 살아 뭐 하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이 입으로 밀려 나오기 전 내가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껏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한 적이 있던가? 나를 도마 중심에 올려두고, 내가 뭘 원하고, 뭘 하고 싶으며 어디를 가고 싶은지 아는 일에 열성을 다한 적이 있던가? 나는 그런 것에 너무도 서툴렀고, 또 때로는 나를 위한다는 그 지점에 너무도 많은 타인과 책임감, 감정을 두었다는 걸, 회사 자판을 더 이상 두드릴 필요 없게 된 훗날 알게 되었다.
옷 하나 잘 못 입은들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 옷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직감한다면, 그건 옷을 갈아입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렇듯 만약 자신을 먼저 알지 못하면 어디를, 어떻게 가든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빨리 가는 일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옳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돋우는 내재적 동기이지, 속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옳은 방향은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 내 나름대로 답을 내리자면 고려해야 할 것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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