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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강민주 시

계절을 품은 작은 씨앗에게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2

by 엄마쌤강민주

계절을 품은 작은 씨앗에게

―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2

― 노루벌 해피하우스에서


해안 강민주


지난해,

침묵의 빛으로 피어난 수선화.

그 텅 빈자리에서

엄마는 애타는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지.


한 줌 햇살이

그 침묵을 어루만지자

올해는 노란 속삭임이 기지개 켜듯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단다.


지난해,

붉은 기억을 안겨주던

산딸기는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졌지만,


올해는 그늘 한편 숨 쉬던

복분자가

진홍빛 유혹으로 피어나

엄마 손끝을 부르더구나.


손끝에 담긴 복분자의 달콤함.

찰나의 설렘을 따던 순간,

말벌의 매서운 침에

비명이 절로 나왔단다


말벌의 소리 없는 분노가

엄마의 설렘을

고통으로 바꾸었던 그 순간

알게 되었단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다는 걸.


그래서 엄마는

가장 찬란한 순간이면

할미꽃으로 피었단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되,

강자와 약자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


아들아,


한 길만 고집하며 걷는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수많은 꽃과 열매가 있다는 걸

기억하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단 몇 알의 씨앗만을 남기더라도,

꽃들의 모든 피어남과 지움은

소중한 생의 흔적이란다.


작년에도, 올해도

풍성하게 익어가는 블루베리를 보렴.

가난한 시인을 위해

하늘이 준비한 다정한 만찬이란다


엄마는 늘 바란단다.

네가 눈부신 태양만을 좇아

외길로 조급히 달리지 않기를.


때론 오지 않는 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계절을 품은 네 안의 작은 씨앗을

네가 원하는 꽃으로 피워낼 때까지

두 손 모을 줄 알기를.


엄마는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한단다.


#해안강민주시인

#아들에게 보내는 시


2025년 7월 4일

사랑하는 아들에게 복분자를 따주려다,

그 속에 숨어 있던 말벌에게 호되게 쏘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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