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는 처음 오던 날 하루 정도만 구석에서 울었고, 다음날부터 집사 옆에, 위에, 밑에서 그렁그렁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던 될성부른 개냥이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건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육묘의 세계
정말 신기했다. 이 2개월 된 아가 냥이가 뭘 안다고 첫날부터 모래(에드워드 로이 만세)에다 알아서 척척 볼일을 보고 앞발로 덮는지. 하지만 역시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필요했던 아리는 3일 만에 본인과 비슷한 색의 포근한 회색 이불에 작은 볼일을 시원하게 보셨다. 새벽 두 시의 일이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과 더러운 환경을 안다. 6개월쯤 됐을 무렵, 쓰레기통 옆에도 작은 볼일을 시원하게 보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명 '똥스키를 탄다.'라고 말하는 고양이들이 바닥에 스키를 타듯이 항문을 닦는 행위는, 속이 불편하거나 아파서 묽은 변을 보거나, 너무 된 변을 봐서 깨끗하게 뒤처리가 되지 않았을 때 방바닥에 한다. 그 자세가 너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과연 집사가 뒤처리를 할 때도 웃을 수 있을까?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다.
@PDSA - 똥스키 (영어로는 cat scooting)
'집에서도 향기로운 사람 되기'는 적당히 포기해야 한다.
만약 나에게 예민하고 감각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향'과 관련된 부분이다. 향초와 향수, 바디미스트와 섬유유연제 등 으로부터 얻는 위안은 정말 크다. 하지만 후각이 예민한 고양이들에게 이런 강한 자극의 향기는 스트레스 일 뿐 만 아니라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위험한 라벤더향 등이 포함되지 않은 향수를 사용하고, 소이왁스 캔들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수를 사용할 때는 화장실이나 집 밖에서만 사용한다. 그래도 냥님의 건강을 위해서이니 어쩔 수 없다.
@pixabay - 향수
운이 좋게도, 따로 개인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겼기 때문에 평소에 공부하고 싶었던 조향사 공부와 실습을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고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집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나마 아리가 예민하지 않은 고양이라서 더욱 다행이다.
대체 비닐은 왜 뜯어먹는 거야?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거나 반려할 계획이 있는가? 그렇다면 아래 항목을 일단 구매해라.(메모....)
① 콘센트 정리함 ② 뚜껑이 있는 쓰레기통 ③ 싱크대 덮개 ④ 인덕션 or 가스레인지 덮개 ⑤ 방묘창 + 방묘문 (네트망으로 DIY가능)
고양이가 전선을 갉아먹어 감전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콘센트 박스뿐만 아니라 전선 몰딩까지도 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건 길냥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대체 열려있는 쓰레기통 속으로 왜 다이빙이 하고 싶은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경험담)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들은 싱크대 위에서 집사가 무엇을 바지런히 준비하는지 궁금해 할것이며,(그렇다고 싱크대에서 순순이 목욕을 당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ㅂㄷㅂㄷ) 터치로 조절되는 인덕션을 모르고 고양이가 켜서 화재가 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조리가 막 끝난 가스레인지는 뜨겁기 때문에 고양이가 화상을 입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덮개는 필수다.
고양이는 아주아주 좁은 공간도 잘 통과한다. '액체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말이다. 방범창으로는 이 고양이들의 탈출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밖을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내부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외부로 활동 반경을 넓힌 고양이가 한정된 영역에서만 만족하며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수의사들이 산책냥을 권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 방충망을 뚫고 나간 고양이는 되찾기 힘들 수도 있고, 또 운이 좋아 찾게 되더라도 사고뭉치 탈출냥의 길로 빠지게 되며, 고층에서도 겁 없이 뛰어내려 고양이 별로 가는 반려묘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가 나의 냥이와 행복한 반려 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면, 이 방묘창+방묘문은 정말 필수다.
아리 - 다시 한번 강조한다. 방묘창은 필수다.
집사로서 감수해야 할 것은 내가 위에 나열한 것 말고도 훨씬 많다. 흔히들 고양이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자신이 있을 때, 그때 반려할 마음을 먹어도 절대 늦지 않다. 무엇보다 신중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생명을 들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