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레스토랑 문화의 탄생기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인의 식생활 및 미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요리의 확장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 첫번째 이유는 '길드 제도'의 폐지이다. 길드의 해체로 누구나 요리 아이템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 이유는 구제도 붕괴 이후 프랑스 요리의 중심이 된 '레스토랑 문화'가 본격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귀족들이 프랑스 혁명 이후 망명을 하면서 요리사들을 동반했다. 이는 실제 프랑스 요리를 해외에 전파하는데 이바지했다. 또한 귀족들의 몰락으로 졸지에 실직한 귀족들의 요리사들이 거리로 나와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레스토랑의 성공기는 프랑스 혁명의 또 하나의 산물이 되었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레스토랑'이라는 용어는 임산부나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고기를 넣고 푹 끓인 수프를 의미한다. 1765년에 '불랑제'라는 이름의 고기 수프 장수가 현재 루브르 거리에 해당하는 풀리 거리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레스토랑을 최초로 오픈했다.
이후 새로움, 스타일, 고가격 같은 당시 레스토랑의 대표적인 특징을 가진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불랑제를 모방하여 생겨났다. 이들은 일반 서민들은 감히 앉아 볼 꿈조차 꿀 수가 없는 곳들이었다.
수도 파리의 레스토랑들은 주로 귀족 요리를 모방한 간단한 요리들을 제공했으나 지방에 문을 연 레스토랑들은 파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야베스(마르세유) 같은 그 지역의 특산 요리들을 선보였다.
정력을 회복하는 수프를 파는 장소에서 시작한 레스토랑은 구제도 붕괴 이후 프랑스 요리의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요리사는 귀족을 위해서 보다는 자신의 기술을 살리기 위해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레스토랑이 출범한 지 불과 30년이 지난 후에 그 숫자는 무려 3천개에 달했다.
레스토랑의 놀라운 성공에 따라 미식이나 식도락을 의미하는 '가스트로노미'가 진정한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승자인 부르주아 계급은 새로운 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귀족의 코드를 차용했다. 그들은 사적인 연회와 고급 레스토랑의 잦은 출입을 통해서 자신들의 부와 능력을 과시하고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이는 SNS 상에서 느껴지는 지금의 사회적 풍토와도 유사한 느낌이 없지 않다.
레스토랑은 '회복하다'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음식으로, 이후 이를 위한 장소로서의 의미에 정착한다.
"가스트로노미는 상냥하고 우호적인 예술이다. 그것은 언어장애도 극복하고 교양있는 친구들도 만들어주면 우리의 가슴을 따듯하게 해준다." (사무엘 챔버레인)
출처: 미식 인문학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이범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