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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Oct 26. 2024

엄마의 당부

사람들이 전화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좀 어떠셔?”

55년을 함께 산 남편이 죽었으니, 걱정할 만도 하다. 누구는 남편이 죽고 우울증이 왔다, 누구는 치매에 걸렸다며 걱정을 해준다. 근래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당부한다.

엄마 잘 보살펴 드려. 잘해 드려. 엄마를 잘 보살핀다는 건 뭘까?     

내 기억 속 엄마는 ‘시비’ 거는 존재였다. 언젠가부터 내 말과 행동에 늘 시비를 걸었다. 학생 때는 네 친구들 다 맘에 안 든다, 네가 산 옷이 그렇지. 다 싸구려야, 라며 깎아내렸다.

지금 생각하면 '불쌍한' 엄마를 내버려 두고, 다른 세상으로 가려는 딸이 질투 나고 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그 말이 다 가시가 되어 맘을 푹푹 찔렀다. 그럴수록 난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것도 또 다른 ‘인정욕구’였을 테지만.      


그렇게 멀리멀리 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엄마 옆에 있다. 이제는 엄마가 거는 시비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아이가 아니다. 땅콩을 캐다가도, 옥수수를 따다가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배추를 절이다가도 우리는 싸웠다. 나머지 가족들이 ‘징하다’고 할 정도로 싸우고 싸웠다.

이제 엄마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말로도 덩치로도. 분에 찬 엄마가 한 마디 던진다.

“저거 딸 맞아? 다른 딸들은 엄마한테 잘한다는데…”

엄마가 섭섭함을 드러냈다. 엄마가 했던 무수한 말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그녀는 기억을 못 한다.      


아버지가 죽은 지 5개월이 넘었다. 예상보다 엄마는 명랑하다. 며칠 전엔 남자 동창을 만나러 서울에 다녀왔다. 60년 만에 만나는 동창이 사준 밥과 커피를 먹고 왔다. 동생은 아빠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를 만나냐고 했지만, 그건 오버다. 그동안 ‘서방’이 있어서 못 했던 일을 이제야 하게 된 거다.

60년 만에 남자동창을 만나고 온 엄마에게 어땠냐고 물었다.

“으응, 재밌었어. 옛날이야기도 하고.”

80살 주글주글한 엄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요즘은 밥도 안 한다. 매일 같이 삼시세끼 밥을 차려 ‘서방’을 먹였는데, 이제야 졸업을 한 것이다. 엄마는 세끼 중 두 끼는 회관에서 할머니들과 먹는다. 수다도 떨고 화투도 치고, 저녁에 들어오는 엄마 얼굴이 환하다.  

나를 대하는 엄마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졌다. 나긋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부른다.

깻잎김치도 듬뿍 주고, 고추 농사를 도왔다고 거금 50만 원을 주셨다. 지금껏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지만, 그만큼의 돈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돈을 주며 엄마가 당부했다.


“너 끝까지 같이 해야 해. 추석 지나면 마지막 고추 딸 거니까, 끝까지 같이 해야 된다.”

나는 황당해서 웃음이 터졌다.

‘끝까지’의 끝은 어디일까? 고추가 끝나면, 깨도 벼야 하고, 콩도 털어야 하고, 배추도 따서 김장도 담가야 한다. 그 끝은 올해 농사가 아닌 듯하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나를 보살피라는 말처럼 들렸다.

엄마가 명랑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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