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행의 시작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외로움이다.
사람들은 아이가 담배를 피우고,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싸우고, 거짓말을 하면 그 행동에 주목한다. 무너졌다, 어긋났다, 지도해야 한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온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시작하기 전, 혼자서 어떤 밤을 보냈는지. 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외로웠는지를. 우리는 너무 자주 아이의 결과만을 바라보고, 그 마음이 조용히 부서지기 시작한 순간은 보지 못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여러 번 마주했다. 겉으로는 거칠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늘 주변을 의식했고, 말투는 방어적이었고, 웃음 뒤에는 설명되지 않은 피로가 깃들어 있었다. 그들에게 비행은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탈출구였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할 때,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무기력으로, 누군가는 반항으로, 누군가는 도망으로. 방식은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하나였다. 외로움. 아주 오래되고 깊은 외로움.
어떤 아이는 매일 밤 같은 길을 걸어 집에 돌아갔다. 말없이 밥을 먹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텔레비전 소리만 들리고, 누구도 안부를 묻지 않았으며, 내일 학교에 갈 필요도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사람은 스스로가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 아이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준 건 또래였고, 때로는 그 또래의 말이 다정한 방식이 아니라도, 최소한 자신을 끌어당겨주는 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이는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한 무리에 속하게 되고, 그 안에서만큼은 잠시 존재감을 확인받는다. 그리고 어른들은 말한다. 왜 저런 애들이랑 어울리냐고. 하지만 정작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라도 ‘어딘가에 속해 있는 느낌’이 간절했을 뿐이었다.
비행보다 먼저 외로움이 온다. 그것은 누구도 안아주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보지 않았던 감정이다. 방 안에서, 교실의 구석에서, 조용히 혼자였던 시간들이 쌓이고, 아이는 점점 다정한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좋은 어른, 안전한 사람, 진심을 들어주는 존재를 믿지 않게 된다. 그렇게 외로움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공격으로 바뀐다. 그 공격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 돌아오기도 한다. 실패한 관계들이 쌓이면, 사람은 자신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어차피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마음은 조금씩 닫히고, 아이는 자신을 방어하는 법밖에 모르게 된다.
나는 그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기 전의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았던 오후, 혼자 남겨진 교실, 설명해도 믿어주지 않았던 말들. 그 시간 속에 존재했던 외로움이 얼마나 클지, 얼마나 깊었을지를. 비행은 결과일 뿐이다. 그보다 먼저 있었던 건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었고, 그게 반복해서 좌절되며 생긴 자포자기였다. 아이들은 원래 문제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너무 오랫동안 혼자였고, 아무도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