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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혼자 감당해야 할 감정이 너무 많았어요

by 일상온도

감정은 나눠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나의 감정을 받아주고 함께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경험한 건 조금 달랐다.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고, 털어놓은 마음은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 감당하는 편이 낫다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는 복잡한 기분들. 서운함, 불안함, 외로움, 억울함, 죄책감… 그런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것들이 나를 덮쳐올 때면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데 익숙해졌고,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길어질수록, 내 안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쌓여만 갔다. 감정을 감추는 데 드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컸고, 어느 순간 나는 매일이 지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너는 참 괜찮아 보여”라고 말하면, 그 말에 웃어줘야 한다는 걸 안다. 그 기대에 맞춰주는 게 사회성이었고, 어른스러움이었고, 이 세계에서 버티는 기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이 들릴 때마다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졌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그 말은 나에게 괜찮아야만 한다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가끔은 묻고 싶었다. 왜 나는 늘 이렇게 혼자일까. 왜 내 감정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할까. 왜 나는 어떤 위로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 질문들은 대답 없이 남았고, 나는 오늘도 감정을 삼킨 채 하루를 보냈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내 안에 고요히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지 못한 감정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어서다. 혼자 감당해 온 감정들이 언젠가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무의미한 고통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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