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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아무도 내 진심을 묻지 않았어요

by 일상온도

언제부턴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가 자꾸 사라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말은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 말이 내 마음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분위기에 맞게, 상황에 맞게, 상대가 원하는 만큼만 내 마음을 보여줬고, 그게 어른스럽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에게도 묻지 않게 되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진짜 어떤 마음일까. 그런 질문을 멈춘 채 살아왔다.


어릴 때는 질문을 많이 하던 아이였다. “왜 그래?”, “너는 진짜 괜찮아?” 같은 말들이 입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었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가만히 두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을 삼키게 되었다. 특히 스스로에게는. 내 진심을 묻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걸 들여다보는 순간 더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심을 나눈 기억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 내 마음을 물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질문은 오지 않았고, 나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네 마음을 알고 싶어”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그 말 하나에 눈물이 핑 돌았고,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내 마음을 방치해 왔는지 깨달았다.


진심을 묻는다는 건, 단지 감정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고, 내가 나를 향해 내미는 손이다. “지금 어떤 마음이야?”라는 말은, 너라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질문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내가 내 마음을 먼저 물어주는 연습, 그게 시작이라는 걸. 진심을 말할 용기를 내기 전엔, 진심을 물어줄 사람을 기다리기보단 내가 내게 먼저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쌓일 때, 언젠가는 진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도 만날 수 있겠지. 나는 이제 조금씩, 내 마음의 안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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