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의 예언서
#004 소설 밖
방금 Dr. T.는 예상 밖의 짧은 소설을 체험했다.
그는 캣캣의 몽글몽글한 송신 아이콘을 누르며 질문을 던졌다.
Dr. T. : 음... 내겐 보편적인 공상과학소설이었어. 왜 하필 황무지야? T.S. 엘리엇의 시는 뭐고?
Dr. T.가 뜬금이 없다고 느낀 이유는 많았다. 그중 소설 속 에이프릴을 유인한 '그것', 즉 탄탄의 정체가 가장 모호했고, 그가 시를 거꾸로 읊는 장면도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콘 : 이 소설은 모더니즘 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학습한 후, 제가 소설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어떤 점이 궁금한지 천천히 질문해주세요.
Dr. T. : 나는 그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래서 탄탄이 시를 거꾸로 읊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단다.
아이콘 :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설명부터 해드릴게요. 어느 부분부터 설명을 하면 도움이 될까요?
Dr. T. : 응, 좋아. 이왕이면 쿠마에의 무녀가 나오는 첫 소절부터 천천히 설명해줘.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몽글몽글한 아이콘의 우측으로 가상의 공간이 구름처럼 둥둥 떠 있다. 그 구름 사이에 작은 빗방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동굴 속에나 나올 법한 울림 소리가 들린다. 울림 소리는 마치 예언자같은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와 함께 다채로운 문자와 숫자, 이미지들의 영상이 삼차원 가상 공간 속에서 춤을 춘다.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콘이 재배열을 마치고 Dr. T.의 질문에 응답할 자세를 갖춘다. 이 여러 개의 아이콘은 각각 다른 목소리로 답을 한다.
아이콘 : 쿠마에의 무녀는 쿠마에 시빌 또는 쿠마에의 시빌(Cumaean Sibyl)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 쿠마에에 위치한 유명한 예언자였으며,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영생을 선물로 제안했습니다. 이에 쿠마에 시빌은 한 줌의 모래알 수만큼의 생명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당시에는 '영원한 젊음'을 요구하는 것을 잊고 말았죠. 결과적으로 시빌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가며 점점 쇠약해졌고, 결국 인간의 형태도 잃고 목소리만 남았다고 전해집니다. 쿠마에 시빌은 특히 로마 신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로마의 지도자들이 그녀에게 국가의 운명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녀의 예언은 라틴어로 기록된 시빌의 예언서(Sibylline Books)에 담겨 있었고, 이 예언서는 로마의 중요한 국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참고되었습니다.
Dr. T. : 오! 흥미롭군. 시빌의 예언서가 있다고?
아이콘 : 네, 시빌의 예언서는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 중요한 신탁 문서로 여겨졌습니다. 이 예언서는 쿠마에 시빌과 같은 예언자들이 남긴 것으로 전해지며, 로마의 운명과 관련된 예언이 담긴 책들로 여겨졌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쿠마에 시빌이 로마의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또는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게 아홉 권의 예언서를 높은 가격에 팔려고 했습니다. 왕이 이를 거절하자 시빌은 예언서 중 세 권을 불태우고 다시 제안했지만, 왕은 또 거절했습니다. 결국 시빌이 다시 세 권을 불태우고 남은 세 권만을 제시하자 왕은 이를 비싼 값에 사들였습니다. 로마는 이후 이 예언서를 국가적으로 매우 신성하게 여겼으며,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나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예언서에 의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 책들은 로마의 신전에서 특별한 사제들이 보관하고 관리했지만, 기원전 83년에 큰 화재로 인해 원본이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일부 사본이 만들어졌지만, 원본과 같은 권위는 아니었습니다.
Dr. T. : 예언서의 일부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아이콘 : 시빌의 예언서의 내용은 대부분 신비에 싸여 있으며, 정확한 원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일부 기록에 의해 그 내용의 일부분이 전해집니다. 예언서에는 주로 신들에 대한 경고, 특정 의식을 행해야 하는 지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예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언서의 내용은 고대 로마에서 큰 재난이나 정치적 위기가 닥쳤을 때 참조되었죠. 예를 들어, 로마가 전염병에 시달리거나 큰 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 사제들은 예언서를 열어 "어떤 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특별한 제례나 의식을 수행하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가 큰 패배를 당한 후, 시빌의 예언서는 "이방인 신을 로마로 초대하라"는 내용을 전했고, 이에 따라 키벨레 여신이 로마로 불려왔습니다. 이처럼 예언서에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지침보다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문구가 많았다고 전해지며, 그 해석은 사제들의 몫이었습니다.
Dr. T. : 저 당시 무녀들이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고 예언서를 만들어 둔 것인가? 아니면 전설이나 신화인가?
아이콘 : 시빌의 예언서는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 신탁으로 여겨졌으며, 역사적 기록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됩니다. 그러나 이 예언서가 진정으로 무녀들이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고 남긴 것인지, 아니면 신화적 요소가 덧붙여진 전설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로마인들은 시빌의 예언서를 신성하게 여겨 국가 차원에서 관리했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이를 참고해 결정했다는 점에서 신탁적 의미가 컸고요. 다만, 예언서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신빙성에 대한 해석은 여러 상징과 암시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 사제들에 의해 해석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시빌의 예언서는 고대 로마인에게는 실제로 신성하고 중요한 예언서로 기능했지만, 후대에서는 이 예언서가 신화와 전설적인 요소가 혼합된 결과로 평가하기도 하죠.
Dr. T. : 시빌(Sibyl)의 뜻은 무엇인가?
아이콘 : 시빌(Sibyl)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여성 예언자를 뜻합니다. 원래 그리스어 시빌라(Sibylla)에서 유래했으며, 특정한 신, 특히 아폴론과 연결된 신탁을 전하는 능력을 가진 여성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고대에는 여러 시빌이 존재했으며, 그 중에서도 쿠마에 시빌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시빌들은 신탁과 예언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각 도시나 지역에 따라 고유한 시빌이 존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시빌(Sibyl)이 실제로 존재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시빌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 그룹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여러 도시와 지역에 각기 다른 시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전이나 동굴 등 신성한 장소에서 활동하며, 사람들이 신의 뜻이나 미래를 묻기 위해 찾아오는 것을 통해 예언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장 유명한 시빌 중 하나인 쿠마에 시빌은 이탈리아의 쿠마에에서 활동했고, 그리스 신 아폴론과 연관된 예언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녀를 비롯한 여러 시빌들이 남긴 예언서가 실제로 로마 제국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보관되었을 정도로, 시빌의 예언은 신성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시빌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기보다는,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Dr. T. :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쿠마에의 시빌이 첫 연에 등장하는데,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아이콘 : 네, 첫 연에는 쿠마에의 시빌이 등장합니다. 이 시의 서문에서 엘리엇은 고대 로마 작가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에서 발췌한 라틴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서문에 있는 라틴어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 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 Σίβυλλα τί θέλεις; respondebat illa: ἀποθανεῖν θέλω.
위의 라틴어 내용을 해석하면, "내가 쿠마에의 시빌이 병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이들이 그녀에게 '시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죽고 싶다'고 대답했다."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나 끝없는 늙음 속에서 쇠약해진 쿠마에의 시빌의 비극을 나타내며, 시 '황무지'의 전체적인 주제와 연결됩니다. 엘리엇은 이 시빌의 모습에서 인간 존재의 고통, 영적인 황폐, 현대 세계의 무의미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죠.
Dr. T. : 아! 이제야 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Dr. T.는 방대한 시의 첫 소절부터 남다른 이 어렵고 난해한 상징적 언어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사타리콘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Dr. T. : 사티리콘에 대해 알려줘.
아이콘 : 사티리콘은 고대 로마 작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풍자 소설로, 기원후 1세기 네로 황제 시기에 쓰였다고 여겨집니다. 주인공 엔콜피우스와 그의 친구 아실토스, 젊은 소년 기톰이 방탕한 로마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트리말키오의 연회입니다. 엄청난 부를 자랑하는 해방 노예 트리말키오는 사치스럽고 과시적인 연회를 열어 자신을 뽐내지만, 무식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이 장면은 로마 상류층의 허영심과 타락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후 엔콜피우스와 아실토스는 여러 황당한 사건과 갈등을 겪으며 여정을 이어가며, 이야기는 로마 제국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 욕망의 허약함을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남은 이야기들만으로도 로마 제국의 부조리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답니다.
Dr. T. : 사티리콘은 일종의 풍자소설이었고, 그 소설을 시에 차용한 것이군.
아이콘 : 네. 사티리콘에서 쿠마에 시빌의 대사를 인용한 것은 황무지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장치죠. 쿠마에 시빌의 이야기는 그녀가 영생을 얻었지만 점점 쇠약해지며 끝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바라는 비극적 존재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황무지가 다루는 삶의 황폐와 절망을 암시합니다.
시빌은 무한히 오래 살 수 있는 특권을 얻었지만, 그 결과는 소멸과 고통뿐이었고, 현대인의 모습도 영원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정신적으로 메말라 가는 모습과 겹쳐지죠.
또한, 엘리엇은 사티리콘의 일부를 차용해 고대와 현대, 인간의 본질적인 허무가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점을 부각하려 했습니다. 황무지는 단순히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시가 아니라, 인류가 겪는 근본적인 위기와 허무를 고대와 연결시키며 보편적이고 영원한 주제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