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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태양 Oct 31. 2024

우아하면서 다정한 조명이 갖고 싶어졌다

#5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비슷한 제목과 파스텔 톤의 풍경을 담은 책 표지를 띈 소설들이 많아지면서 날 스쳐 지나갔던 책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두 배우가 읽어주는 오디오 북을 잠시 들어본 기억도 있다.

얼마 전 내가 내려 준 드립커피를 먹던 친구가 이 책 속의 바리스타 이야기를 하며 추천해 준 김에 휴일 내내 읽어보았다.

휴일도 힐링인데, 잔잔하면서도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 기분 좋은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다.


책을 열자마자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해요. 책, 동네 서점,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 생각, 성찰,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성장,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좋은 사람들."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아~~ 저도요!!"


좋아하는 것들을 어떻게 소설로 풀어놓았을지 기대가 되었다.




난 꿈을 이룬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고, 힘든 순간들은 감사하고 좋은 시간들로 덮어가며 지낸 지 20년이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꾼다.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 많다.

나이 든 나를 아무도 써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꿈을 꾸는 걸 누가 뭐라 할까?

또,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지 않나.


책을 읽으면서 정말 정말 북카페의 바리스타를 해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시간 내기가 어려워 미루고 있지만 독서모임도 꾸준히 하고 싶다. 생각보다 내 주변에 독서모임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독서모임을 주로 하는 카페도 고, 휴남동 서점처럼 운영하는 작은 서점도 있었다. 가끔 둘러볼 생각을 하니 설렌다.


코바늘로 다양한 수세미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야심 차게 도전을 해 보았으나 나랑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집에 예쁜 조명이 없다.

예쁜 조명을 사고 싶기도 하지만, 집의 전체적인 느낌과 어울리지 않아 구입한 적이 없다.

책 속 영주의 서점과 집을 상상하다 보니 나도 우아하면서 다정한 조명이 갖고 싶어졌다.

집 안에 그렇게 꾸밀 수 있는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되었다. 온기 있는 하루였다.





영주생각들


1.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32)


2. 영주는 민준과 한 공간을 사용하며, 침묵이 나와 타인을 함께 배려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느 누구도 상대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말을 지어낼 필요가 없는 상태, 이 상태에서의 자연스러운 고요에 익숙해지는 법 또한 배웠다.(43)


3. "즐거움이 빠진 꿈은 저도 별로 같아요. 꿈이냐, 즐거움이냐. 하나만 택하라면 저도 즐거움! 하지만 전 아직 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설레기도 하거든요. 꿈 없이 사는 삶. 눈물 없이 사는 삶만큼 삭막할 것 같아요.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기는 해요.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다.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된다.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307)


4. 영주의 오늘 하루는 어제와 비슷할 것이다. 책에 둘러싸인 채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책에 관한 일을 할 것이며, 책에 관한 글을 쓸 것이다. 그러는 틈틈이 먹고, 생각하고, 수다도 떨고, 우울했다가 기뻐할 것이며, 책방을 닫을 즈음에는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며 대체로 기쁜 마음으로 서점 문을 나설 것이다. .....

..... 영주는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인생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어딘가에서 읽은 문구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359)


지미


1. "자, 그럼 오늘 원두는 저번에 말했다시피 콜롬비아 블렌딩이야. 콜롬비아 40, 브라질 30, 에티오피아 20, 과테말라 10, 콜롬비아 커피로는 균형감을 준다고 생각하면 돼. 그럼 브라질로는?"(68)


2. 영주가 집을 꾸밀 때 무엇보다 신경 썼다던 조명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두 여자의 모습도 제법 근사하게 꾸며주었다.

"너네 집은 조명만 좋아." 핀잔을 주는 지미에게 영주는 "책도 많은데" 하고 대꾸했다. "책은 너나 좋지." 또 지미가 핀잔을 주자 영주는 "이 집은 주인도 꽤 괜찮아요"하고 대꾸했다. "너도 너나 좋지." (102)


3. "흔히들 현재를 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말이 쉽지 현재에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죠? 현재에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는 걸 말해요. 숨을 쉴 땐 들숨 날숨에만 집중하고, 걸을 땐 걷기에만 집중하고, 달릴 땐 달리기에만,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과거, 미래는 잊고요." (279)



민준


1. 운동하고, 일하고, 영화 보고, 쉬고. 민준은 이 단순한 사이클이 이젠 제법 사이좋게 맞물려 굴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살아도 될 것 같았다.(69)


2. 대신, 민준은 쉬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되고부터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한번 우등생이 되자, 계속 우등생이 되어야  했고, 우등생은 늘 노력해야 했다. (77)


3. 책을 읽는 일과 커피 내리는 일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점이 그렇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그렇고, 점점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렇고, 결국 독서의 질과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독서가와 바리스타는 독서하는 그 자체, 커피 내리는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듯했다. (122)


4. 책에는 변리사로 일을 하다가 바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만다의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민준은 사만다의 말을 천천히 두 번 읽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했다.

"처음으로 제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성장한다는 느낌. 일에서 중요한 건 바로 이 느낌이 아닐까 하고 민준은 생각했다. (182)


정서


1. 그러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휴남동 서점을 처음 찾은 날 받았던 느낌이었다. 왜 이런 느낌이 또 드는 거지. 정서는 이 집에서도 자기가 받아들여지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자체가, 이 느낌을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놀라우면서도 슬펐다. 하지만 그녀는 이 슬픔이 좋은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205)


승우


1. 승우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여행지에서 모르는 길을 걸을 때의 기분이 나더라고요. 골목골목을 기웃기웃하며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기분, 낯설어서, 모르겠어서 설레는 기분,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휴남동 서점이 사람들에게 그런 곳이 아닐까 싶었고요." (221)


2.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 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274)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그 상태를 감당하며 계속 생각을 해봐야 할 때도 있어." (276)


좋은 길을 내는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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