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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Nov 25. 2021

햇살이 물어보는 운동회 이야기




2010년경의 어느 가을. 엄마 아버지를 스치고, 나무와 어린 나를 휘날리던 바람이 그날처럼 불었다. 세월을 휘감고 찾아온 바람이 이번에는 나를 딸아이의 가을 운동회날로 이끌었다.


가을 운동회날. 아침에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서서 등교를 한다. 등교라니. 다시 어린아이가 된 거 같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학교 가는 주부라니 무슨 바람이 분 거냐?"라고 묻는 듯하다. 바람 사이로 줄줄 새는 가을 햇살이, 맥없이 식어가는 낙엽을 다시금 데우고 있다. 놀이터처럼 알록달록한 단풍터널을 지나,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니,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문이 나온다.


학생수는 나의 국민학생 시절보다 몇 배로 많은데도 운동장 크기는 오히려 더 작은 어느 도심의 초등학교 운동장. 모두 똑같은 하늘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운동장을 채우고 있다. 바글바글한 티셔츠들 속에서도 우리 아이를 바로 잡아낸다. 우리 엄마도 이랬을까... 


내가 그랬듯이 딸은 달리기에서 4명 중 4등을 한다. 꼴찌여도 내게 달려오는 걸음은 1등으로 보인다.

우리 엄마도 이랬을까...


점심시간, 학모들과 애들이 운동장처럼 둥글게 둘러앉아 피자랑 치킨이랑 떡볶이 시켜서 시끌시끌 즐겁게 먹는다.

우리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김밥 싸서 양손에 들고 왔는데...


운동회가 끝나고, 학모들이랑 커피숍에서 자식 이야기하다가 저벅저벅 집으로 걸어간다. 맥없이 식어가는 낙엽을 다시금 데우던 가을 햇살이 점점 붉게 사라져 간다. 빈 도시락과 내 손을 잡고 저 햇살을 봤을 우리 엄마. 저 도시락을 채우느라 나보다 더 피곤했을 엄마도, 운동회 날 나의 교문을 들어설 때 나처럼 뭉클했을까?


다시 사라지는 가을 햇살. 나무처럼 붉은 하늘 아래 붉게 타오르는 건, 아이에 대한 미안함일까, 내가 뺏은 우리 엄마의 젊음에 대한 그리움일까, 자꾸만 더 멀어지는 유년에 대한 아쉬움일까. 생각들이 저벅저벅 가을 앞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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