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우주에서 홀로 몇 십억이 바글바글거리는 지구. 이곳 지구에서도 유달리 발자국들이 모여드는 빌딩 숲이 있습니다. 시리도록 휘청이는 도심의 불빛 속으로 지구인의 눈동자들이 시간에 비례하여 밀집되는 이곳. 도로 사이로 빼곡히 둘러싼 거대한 빌딩 숲 속은 미처 개봉하지 못한 판도라 상자를 보는 듯 긴장과 설렘이 비트에 데일만큼 튕겨집니다.
내가 이곳에 올 거라는 공지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은 그곳을 밀물처럼 채워 들었습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나를 기다리는 인파들이 흡사 파도처럼 철썩이는 것 같습니다. 총천연색의 알록달록한 인파들은 내가 온다는 말에 파도처럼 와주었고, 공연이 끝나면 쏴아 소리를 내며 흩어질 테니까요. 각자의 언어와 생각과 문화들이 지금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심장 소리를 닮은 리듬은 하나인 듯 아닌 듯 공연의 시작을 기다립니다.
지상의 광장이 흥성스러워질수록 마천루 한켠에 마련된 대기실은 조용히 분주해졌습니다. 대기실에서 공연장으로 향하는 복도는 통창으로 되어있어,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비일상으로 비행을 하는 분위기가 났습니다. 천지의 고도의 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만큼이나 아득했고, 그만큼 심장 박동수가 가파르게 비행하며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너무 높다는 생각을 하며 아래를 보자, 나를 만나기 위해 무대를 향해 오매불망 서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대기실의 나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긴장과 동시에 팬들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커다란 전광판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30초 후면 나는 같이 크게 숨을 들이쉬는 백댄서들과 무대 위로 올라가겠지요. 숫자가 내려갈수록 지상에서 환호성이 위로 올라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는 무대에 있겠지요. 성공하던 그렇지 못하던 이미 벌어질 일입니다. 준비도 리허설도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젠 그 최선이 몇 분 동안 유지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5, 4, 3, 2, 1, 0.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밀도 높은 기온과 습도 높은 환호가 최고조에 이르고, 스태프들은 나와 백댄서들을 무대 위로 튕겨 올려줍니다.
포문을 열 듯 첫 포환이 창공에서 쏘아졌고, 건물들은 내 노래에 맞추어서 리드미컬하게 울렸습니다. 지상의 대중들은 쏟아지는 리듬에 환호하거나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팬들을 위한 깜짝 공연이었지만, 무대를 경험하는 청중을 만나고서야 그 의미를 체험합니다. 세상을 조정할만한 거대한 자본으로 구성된 이곳에서 사람들은 나로 인해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자유로이 움직이던 대중들의 물결 속으로 뛰어듭니다. 내가 뛰어든 순간만큼은 나는 그들 생각의 전부를 차지합니다. 찰나의 무대를 위해 영원처럼 연습을 해온 내 육신은 조명과 수많은 플래시에 의해 피사체가 되어 물 흐르듯 마이크를 쥐고 신나게 리듬 위를 날았습니다, 내 몸짓과 목소리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무대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공연장에 묶인 포로는 나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 무대 위에는 내가 군림한다는 겁니다. 나는 눈을 깜빡이고 가쁜 숨을 내쉬는 순간에도 어쩌면 그들의 일상까지 내 동선을 점점 확장해 나갔습니다.
멋진 엔딩 포즈를 잡고 공연에 내려오자 모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그 창문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정말 썰물처럼 차차 빠져나갑니다. 역시 약간은 허전한 걸까요. 나는 팬들의 환호로 살아가는데 팬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요. 물을 마시며 잠시 썰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관계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공연 반응이 엄청 뜨거워요!”
팬들도 당분간은 나를 원동력으로 살아갈까요? 도시에 노래가 꺼져도, 평온해 보이는 도시의 이어폰들에는 나의 목소리가 짙어진 땅거미에 스며들며 퍼져갑니다. 거대한 도시 아래 잠든 무고한 희생과 아픔 위로 나의 움직임이 퍼지기도 하는군요.
도시에 불로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별 사이로 나의 얼굴이 전광판에 깜빡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 얼굴에서 새로운 유명인사들이 전광판에 포개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무수히 스러지는 별들 사이로 또 하나의 별이 스러집니다.
P.s 해당 영상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geHuX7E3NX8?si=IMaLTQvuFPVFOV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