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펙도 없이,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기록
“디자인 전공자세요?”
그 질문을 들으면 늘 조금 멈칫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전공은 맞다. 2년제 산업디자인 전공,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전문 디자이너’의 배경과는 좀 거리가 있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이름을 말해도 아무도 모를 정도였고,
졸업 후의 커리어도 사실 말할 수 없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졸업 후 첫 회사는 가로수길에 있는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들어갔지만, 거기엔 사수도 1년 차,
내가 물어보면 “그건 네가 알아서 해봐”라는 말만 돌아왔다.
야근은 매일, 피드백은 없고 꾸중만 있는 매일.
결국 6개월도 못 버티고 나왔다.
그 6개월은 이력서에 쓸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당시엔 포트폴리오조차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게을렀다. 아니, 아무것도 몰랐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인쇄소였다.
‘어디든 가면 되겠지’ 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거기서 진짜 실무를 만났다.
그리고 실수를 거듭했다. 파일을 잘못 넘기고, 잘못된 규격으로 작업하고…
그래도 다행히 1년은 채웠다.
하루하루가 쫓기는 전쟁 같았지만,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내게 처음 던졌던 시기였다.
그러다 어느 날 본 구인공고.
[포토샵/일러스트 강사 모집 – 경력 무관]
그 한 줄에, 왠지 모를 끌림이 있었다.
경력도 부족하고, 실무도 제대로 해본 적 없지만
'포토샵은 좀 다룰 줄 아니까…'라는 자신감 하나로 지원했다.
그리고… 붙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 넘치고 부리기 쉬운 청년을 원했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고, 간절했다.
첫 강사는 새벽 7시 반 수업으로 시작해, 밤 11시 수업까지.
하루 중 ‘내 시간’은 5시간이 안 됐고,
아침 수업 끝나고 오후 시간엔 보조강의나 준비,
그리고 야간반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하루가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나 역시 잘 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디자이너여서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못하는 마음을 알아서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배우듯 가르쳤고, 가르치며 배웠다.
그러다 보니 학생 수가 늘었고, 반응이 좋아졌고, 나도 성장했다.
내가 다닌 곳은 대기업도, 대형 학원도 아니었지만
또래보다 조금 더 월급을 받는 강사,
수강생들이 '선생님 수업 기다렸어요'라고 말해주는 강사,
그게 내 20대 후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사라는 자리가 내 커리어의 끝은 아니었다.
강사로 일하면서도 외주 디자인 요청은 계속 들어왔고,
그게 결국 내 브랜드 ‘디자인츄’의 시작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강사로 일하며 어떻게 외주를 시작했고, 어떻게 스튜디오가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마무리 한마디
나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못하면 이해했고, 모르면 물었고, 그리고 계속 했을 뿐이다.
디자인이든 뭐든,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어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때론 '나도 안 되는 사람인데요'라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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