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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Apr 16. 2024

우유 트라우마

새 학기는 설렌다지만 제 학창 시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제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어요. 이번 교사는 우유를 어떻게 나눠줄까에 대한 문제였죠. 저소득층 애들에겐 국가가 주기적으로 무료 우유를 줬는데 매일 배급하는게 아니라 몰아서 줬기 때문에 한 번에 받아 가야 할 우유 양이 상당했습니다.


 그 시절 학교에서 나눠주는 무료 우유는 저소득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걸 받아 간다는 건 소위 “못 사는 집 애”란 낙인이던 거죠. 그것도 첫 학기부터.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긴커녕 편견만 심어주는 꼴이었습니다.


 반장을 하게 된 이유, 가장 큰 동기는 바로 저 우유 때문이었습니다. 반장을 하면 교사에게 “제가 가져가서 줄게요”란 말을 할 수 있었거든요.


 저소득층 애들끼리는 서로를 알았습니다. 서로 모를 수도 있었지만 교사가 저소득층 애들만 한꺼번에 불러 한 사람에게 하는 말인 양 상담하는 일이 있던 후론 수로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전  반장인 점을 이용해 우유를 나눠줄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안면 있던 같은 처지 애들 가방에 몰래 우유를 숨겨줬습니다. 무작정 가방에 넣으면 가방이 불룩해져 수상해지니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어떤 날은 가져가서 반 애들이랑 다 같이 나눠먹는 걸로 하자고도 했고요. 무겁고 부끄러운 우유는 그렇게 암암리에 처리되곤 했습니다. 교사는 몰랐습니다. 관심 없었습니다.


 방학 직전엔 멸균 우유 꾸러미가 각 학급으로 배달됐습니다. 모른 척 가져가지 않고 있으면 교사는 빨리 가져가라고 채근했습니다. 짜증섞인 재촉은 모두를 향한 듯 했지만 그의 세모진 눈은 우유를 가져가야 할 우리를 향했고요. 그래도 전 모른 척했습니다.


 결국 우유는 방학 날까지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반의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전 반장인 걸 핑계 삼아 우유 꾸러미를 들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한 팩 한 팩 뜯어 변기에 모조리 흘려버렸어요. 처음엔 웃었는데 마지막 팩을 흘려보낼쯤엔 울게 돼 더라고요. 그 우유가 뭐라고... 그때도 교사는 몰랐습니다. 관심 없었습니다.


 지금도 멸균 우유를 보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우유를 나눠주던 그들이 떠오릅니다.


 교무실로 불러 까만 봉지에 담은 우유팩들을 받아 가게 하던 A 교사, 직접 그것을 가져와 교실에서 상주듯 주던 B 교사, 저소득층 아이들을 한꺼번에 불러 우유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해 보자고 한 C 교사.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한 제 모습도 잊히지 않습니다. 십 대의 저는 그 무심함에 상처받지 않으려 발버둥 쳤습니다. 그들이 했던 선택 덕분에 지금도 멸균 우유는 마시지 않습니다.


 악의 없는 무심한 지시에 상처받던 가난한 눈동자들. 가난한 아이들은 절망에 익숙합니다. 절망 속에서 불신을 배우고 도전보단 방어하는 법을 먼저 익히죠.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처럼 매일, 매년 정해진 시간 절망을 배웠다면 그것도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을 익힌 것도 그들이 준 고난에서 비롯됐단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랑스러워할까요? 그들은 모릅니다.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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