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카르(Pushkar), 인도
인도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고 불린다. 인도를 오랜 기간 여행하다 보면 반드시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져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특히 어느 도시 어떤 골목에서든 만나게 되는 길거리에 느긋하게 누워있는 소들에 익숙해져야 하고, 길거리와 계단을 촘촘하게 메워내고 있는 소 배설물에 대해 무덤덤해져야만 한다. 아직 인도 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소 배설물을 피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무디어지는 때가 온다. 아마 내가 푸쉬카르(Pushkar)를 방문했던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푸쉬카르는 참 독특한 느낌을 가진 도시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도시의 중앙에는 푸쉬카르 레이크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주위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푸쉬카르에 도착해서 얼마간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거리에 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거리에 뛰어다니는 작은 돼지들이었다. 시골도 아닌 도시 한가운데 소떼가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이채로운 광경이긴 했지만, 도시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작은 돼지들을 바라보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돼지들이 나에게 미칠 더 큰 영향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돼지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돼지 울음소리로 깨어나는 아침은 내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경험이었다. 푸쉬카르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이 상황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했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침을 깨우는 동물은 닭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아침을 깨우는 닭의 긴 울음소리를 귓가에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는 아침을 맞이해본 적도 없던 나에게 심지어 돼지 울음소리로 깨어나는 아침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진다지만, 이 경험만큼은 도저히 무디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에 나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저 돼지를 반드시 내 발로 걷어차 버리겠다고 말이다.
푸쉬카르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먼저 끌어당긴 것은 돼지였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브라흐마 신전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 사람의 절대다수는 힌두교도들이다. 힌두교에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섬기는 신전과 사당이 도시마다 거리마다 넘쳐난다. 이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브라흐마, 비쉬누, 시바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신들이다. 시바 신전과 비쉬누 신전은 인도 전역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산재해 있지만, 브라흐마 신전은 이곳 푸쉬카르에만 유일하게 존재했다. 당시 인도 신화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던 나에게는 브라흐마가 그 명성과 지위에 비해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봐 친구! 브라흐마는 위대한 신인데 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신전을 짓지 않지?
시바와 비쉬누에게 바쳐진 신전은 엄청나게 많지 않은가?
그런데 브라흐마에게 바쳐진 신전은 인도에서 단 하나, 여기, 푸쉬카르에만 있단 말이지.
인도 사람들이 브라흐마에게 기도를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그 친구는 얼굴에 장난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브라흐마는 당연히 위대한 신이지!
하지만 브라흐마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은 속도가 달라.
브라흐마는 창조를 담당하는 신이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브라흐마에게 기도를 한다면, 브라흐마가 아무리 빨리 응답을 해도 그 응답이 기도한 사람에게 도착할 때쯤이면 그 기도한 사람은 아마 죽어 있을 게야.
아무리 위대한 신이라도 내가 죽은 다음에 기도를 응답해주는 신이라면 누가 그 신에게 기도하겠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느려도 너무 느린 거지!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에 빨리 응답해 주는 시바와 비쉬누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지."
브라흐마 신전이 여기 푸쉬카르에만 존재하는 이유는 정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신은 인간의 존중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그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내 삶과 연관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신은 무가치하다는 선언이었을 것이다. 신들의 세상이라고 불리는 인도에서 나는 신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 신들을 섬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뿐이다. 그곳에서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도 그곳에 그들과 함께 서 있었었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푸쉬카르의 아침을 깨우는 돼지 울음소리는 아마도 인도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브라흐마의 심술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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