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서울로 1편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에게 어디로 놀러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지난해 가을 1박 2일의 짧은 서울 여행이 영 아쉬웠는지 이번 여름 방학에도 서울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한여름에 우리나라 어딘들 안 덥겠냐만은 천만명이 모여 사는 서울은 복잡하고 더 더울 텐데, 걱정스러우면서도 어디든 가보자는 마음에 숙소와 버스표를 예약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3박 4일이다.
사실 서울 여행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미 경험했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3살, 5살 때였는데 아이들 짐도 많고 무엇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나이였기 때문에 남편이 운전해서 서울에 갔다. 거제에서 서울까지 400킬로미터가 넘는 대장정을 겁도 없이 감행한 것이다. 중간중간 어지러울 아이들을 위해 휴게소에도 들러야 하고, 칭얼대면 최대한 가까운 휴게소로 들어가 바람도 쐬어주어야 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어도 6시간 이상 걸렸던 것 같다. 5년 전 뜨거운 여름날, 크고 작은 다툼도 많았지만 어느 시원한 카페에서 마셨던 차가운 음료수와 녹음이 우거졌던 창덕궁 산책로, 높디높은 롯데타워에서 어질어질하면서도 바닥을 내려다봤던 그런 기억이 드문드문 그날을 떠올라 웃음 짓는 걸 보니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병은 아들의 팔깁스였다.
여행 일정을 짤 때 롯데 월드도 가야지! 아니다 서울 하면 서울랜드라던데 거기나 가볼까? 서울 호텔에서 수영장도 가야지! 아니지. 서울에는 공공 수영장들이 좋은 곳이 많다던데 한 번 가볼까! 싶다가도 뇌리를 스치는 아이의 팔 깁스.
여행 전, 아이의 팔 상태는 많이 움직이는 통에 비교적 천천히 뼈가 붓는 중이라고 했다. 외갓집 일주일, 서울 여행까지 더하면 병원에 적어도 2주는 못 가게 될 것 같다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팔에 꽂혀 있던 ㄱ자 모양의 직경 2~3센티 핀을 뽑아 버렸다. 물론 그냥 순순히 뽑히게 놔둘 아이가 아니었다.
진료 대기실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통에 진땀을 뺐다.
-나중에 하면 안 돼요?
-1분만 기다려 주세요!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못하겠어요! 안 뽑을래요.
간호사 선생님 2분에 의사 선생님, 옆에 엄마까지 거르고 달래서 겨우 핀을 뽑고, 반깁스에서 단단한 통깁스로 바꿔 낀 아이는 아이언맨의 팔인양 깁스한 팔을 나름대로 활용하며 두 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팔깁스를 하고 있지만 안 한 것과 같은 활동량을 보였기에, 조금 고민했지만 물이 묻을 수 있는 곳을 모두 제외하고 서울 여행 코스를 짰다. 남편에게 여행 전날 보낸 일정은 당연히 변경가능한 유동적인 일정이었지만, 나름대로 아이 두 명의 니즈가 고스란히 들어간 계획이었다. 아들은 남산 타워를 꼭 가자했고, 딸은 쇼핑을 가자고 했다. 엄마는 종묘와 창덕궁을 원했고, 아빠는 시원한 실내를 원했으니까. 처음 세운 이 계획은 넷째 날 조금 변경된 것 외엔 거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그 전날 일요일까지 외갓집에서 실컷 놀다가 바로 다음 날 월요일에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힘들진 않을까 했지만 외갓집에서 충분히 쉬고 잘 먹고 놀아서인지 오히려 평소보다 더 기운이 넘쳤다.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 그리고 9시에 우등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이동하는데, 엄마인 나는 버스에서 계속 잠을 잤다.
거제에서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4시간 20분.
지치지도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지하철로 이동해 숙소까지 가니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이동하는 사이사이 걸으면서 조금의 언쟁은 있었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북적이는 서울 한복판에서 다른 데로 휩쓸리지 않고 자기들이 가야 할 방향을 인지하고 움직였다.
첫 번째 여행지는 남산 타워였다.
숙소가 명동이라 남산 타워까지 가까워서 택시로 이동했다.
분명 날씨예보로는 8월 첫 주 폭우가 예상된다고 했는데, 여행 내내 하루 빼고 모두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그 자체였다. 4명이라 지하철 요금보다 택시 비용이 더 비싸지도 않았다. 남산 타워에 오르기 전 모두들 간다는 101번지 남산돈가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밥은 그때그때 보이는데서, 먹고 싶은 것을 먹었는데 4일간의 여행 일정 중 제일 유명한 맛집을 갔지만 맛은 누구나 아는 돈가스 맛이었다.
기분 좋게 늦은 점심을 먹고 조금 걸으니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었다. 10년 전 결혼 초기에 남편과 겨울에 서울 여행을 하면서 왔던 남산 타워를 아이들과 다시 오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지나갔던 통행로, 계단은 그때와 같았고, 그때는 많이 기다려서 겨우 케이블카에 탔지만 평일 오후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금방 케이블카에 올라갈 수 있었다. 겨울밤에 올라가며 봤던 야경에서 뚜렷이 보이는 한낮의 서울은 도로와 건물로 가득 찼어도 산으로 둘러싸인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남쪽으로 우리가 가는 남산, 반대편에 청와대 뒤편의 북악산, 서대문 쪽의 인왕산, 그리고 동쪽의 낙산까지.
서울은 도시를 둘러싼 산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줄기의 한강을 주변으로 사람들이 자리 잡아서 그렇게 크고 오래된 도시인데도 숨 막힐 듯 압도되는 느낌 없이 편안했다.
케이블카는 금세 승강장에 도착했고, 발아래 익숙한 나무 계단과 초록의 나무들을 머리에 이고 천천히 오르니 남산 팔각정이었다. 아들은 누나에게 빌린 카메라로 계속 셔터를 누르고, 딸은 자기 마음에 드는 포즈와 장소를 고심해서 결정한 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아빠는 더운지 그늘로 들어갔으며 나는 전망대에서 그래도 알만한 장소를 열심히 찾았다. 큰 건물 사이로 보이는 궁궐, 청와대, 이름은 익숙한 호텔 등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나오면 아이들에게 말해주느라 바빴지만 아이들은 그보다 색색의 기념품에 더 혹했다.
조금 쉰 후 다시 입장권을 끊고, 남산 타워 전망대에 올라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자리에 앉아 서울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고, 우리도 그 틈에 끼어 쉬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틈에 우리도 외국인처럼 서울에 감탄했다.
사실 그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우리도 서울이 어색하고, 복잡하고, 새로웠으니까.
서울이 그저 신기한 외부인이었나 보다.
전망대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전망대 유리창에 제일 많이 보였던 한글 디자인이었다. 기념품 가게에도, 한글을 디자인한 키링, 엽서, 스티커 등이 제일 많았다. 1학년 아이들 한글 가르칠 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디자인이 많아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이들은 한글보다는 남산 타워 스노볼, 마그넷, 핸드폰 스마트톡 이런 것들이 더 눈이 갔는지 계속 아이쇼핑을 멈추지 않았다.
낮이 길어도 6시가 넘고 7시가 가까워지니 한낮의 열기는 수그러들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저녁 먹을 겸 바깥을 나오니 아직은 여름밤이 확실했다.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니 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저녁보다 더 후덥지근했는데, 사실 그다지 향기롭지 못한 개울의 냄새 때문에 불편했다. 좁은 통행로에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멈춰 사진을 찍는 사람, 개울에 발 담그는 사람 등 밤에도 붐비는 거리에 조금 고즈넉한 산책을 바랐지만 이루지 못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별 일 없이 서울에 와서 유명한 맛집에도 가고, 남산 타워도 다녀왔고, 청계천도 구경했으니 이만하면 잘 돌아다녔다고 할 만했는지 밤엔 네 명 모두 세상모르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