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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그림자

빛 아래 홀로 남은 여인의 이야기

by 영업의신조이

5화.

어둠 속 갈등과 깨달음


"믿음은 이해가 아니라 사랑에서 온다."



밤의 공기가 무거웠다.

달빛이 창살 사이로 스며들며 마당의 흙 위에 희미한 물결을 그렸다.

그 빛은 마치 하늘이 인간의 갈등을 지켜보며 내린 슬픈 장막 같았다.



마리아는...

오랜 침묵 끝에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 속에서도 맑았고, 그 안엔 간절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 ...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요셉, 내게 일어난 일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깃든 거예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공기 속을 천천히 흘러나왔을 때, 요셉의 얼굴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렸다.

그 떨림은 분노보다 깊은 혼란의 그림자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요셉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벽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번져갔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 차가움은 단순한 온도가 아니라, 믿음이 깨질 때 흘러나오는 냉기였다.


마리아가 한 걸음 다가섰지만, 요셉은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로 등잔불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벽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그림자 속에서 두 사람은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요셉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고, 무엇을 찾아 헤매는 듯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말을 떼었다.


“그... 동네 있잖아요. 당신이 봉사하러 자주 갔던 그... 그곳. 거기... 거기 그 남자, 이... 이름이 뭐였더라?”


그의 말끝이 바람처럼 부딪혔다.

“그 사람과 있었던 거냐고?”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마리아의 눈이 커졌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손끝이 하얗게 굳어갔다.

그녀는 말을 잃었다.

억울함보다 가슴이 아팠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


“요셉, 제발… 날 믿어줘요.

내 마음은 오직 당신과 하나님께 있어요.”

그녀의 말은 기도처럼 흘렀지만, 요셉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만해. 더는 듣고 싶지 않아.”

그의 손이 공기를 가르며 그녀를 밀쳐냈다.


그 손끝의 냉기가 마리아의 어깨에 스며들었다.

그 냉기가 온몸으로 번져가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천천히 흘렀다.



밖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지붕의 기왓장을 스치며 울음을 삼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세상은 그들의 첫 갈등을 듣고 있었고, 침묵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그날 밤,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땅의 차가운 기운이 무릎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녀는 두 손을 떨림 없이 모았다.


“주여, 이 어둠 속에서 빛을 보여주소서.

요셉의 마음을 비추소서.”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이 흙바닥에 떨어지자, 등잔불이 잠시 흔들렸다.

마치 하늘이 그 눈물을 기록하는 듯했다.



며칠이 흘렀다.

요셉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일을 해도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하나님이 그녀를 선택하셨다면, 왜 나는 침묵 속에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처럼 내버려 두신 것일까?’



그의 내면은 두 개의 길로 찢어져 있었다.

한쪽은 분노와 의심, 다른 한쪽은 남아 있는 사랑이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천장만 바라보았다.

어둠이 눈을 덮을 때마다 마리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죄의 그림자가 아니라, 슬픔 속에서 기도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느 새벽,

요셉은 꿈을 꾸었다.


희미한 빛이 그의 눈앞에 번졌다.

그 빛은 불이 아니었고, 태양도 아니었다.

모든 어둠을 조용히 밀어내는 순백의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한 존재가 다가왔다.

천사의 목소리가 물결처럼 울려 퍼졌다.


“요셉아, 다윗의 자손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 그녀를 받아들이라.”


그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동시에 심장을 관통했다.

요셉은 숨을 고르며 손을 내밀었지만, 빛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깨어난 순간,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요셉은 떨리는 손으로 겉옷을 여미고 밖으로 나섰다.

길가의 흙은 밤새 내린 이슬에 젖어 있었고,

그의 발밑에서 부드럽게 꺼지는 소리를 냈다.


마리아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창가에는 희미한 불빛이 남아 있었다.

그 불빛이 요셉의 마음을 이끌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손끝이 문에 닿는 순간, 그 차가운 감촉이 심장을 울렸다.

그리고 그는 문을 두드렸다.


“마리아.”


문 안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문이 열렸을 때, 서로의 눈빛이 마주쳤다.

요셉의 눈동자에는 오랜 오해와 후회, 그리고 새로 태어난 확신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미안해요. 이제 알았어요. 우리 함께해요.”


그 말이 떨어지자, 마리아의 눈에서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용서의 빛이 깃든 기쁨의 눈물이었다.


요셉이 그녀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그 손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속에서 두 사람의 체온이 천천히 섞여갔다.

그 온기가 방 안으로 번져들며 등잔불을 흔들었다.

그 순간, 어둠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빛은 들어왔다.



그들은 아직 세상의 오해 속에 있었지만, 더 이상 서로를 오해하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이 어둠을 통과하며 하나의 빛으로 이어졌다.



밖에서는 바람이 멈추고, 먼 하늘의 별이 깜박였다.

그 빛은 마치 하늘이 그들의 화해를 축복하듯 고요히 빛났다.


요셉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이제야 알겠어요. 믿음은 이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랑에서 오는 거예요.”



그 말이 공기 속에 흩어지며 등잔불이 조금 더 밝아졌다.

그 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감쌌다.


그 밤,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사랑은 이미 그들 안에서 새벽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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