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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존재 관찰 일기

존재와 존재가 만나 하나의 울림을 만들다

by 영업의신조이

2화.

존재는 서로의 빈틈의 갈등에서 진화한다

"감정이 윤리를 이끌어가는 인간적 사유의 길"



감정은 언제나 삶의 틈에서 발현된다.

빛조차 들지 않는 고요의 공간에 조용히 스며드는 기쁨, 준비되지 않은 마음을 향해 불쑥 찾아오는 슬픔, 부당함의 결을 일깨우는 분노,

그리고 하루아침에 세계를 눈물바다로 바꾸어 놓는 사랑.


인간은 감정에 의해 흔들리고, 그 흔들림 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며, 이 흔들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감정은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끝내 지울 수 없는 존재의 방식이다.



인간의 기본 권리와 자유를 위한 선택도 이러한 흔들림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인권은 선언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며, 어느 날 누군가의 떨리는 말 한 줄이 가슴 깊숙한 곳에 미세한 울림으로 도착할 때 비로소 실감되는 그 무엇이다. 자유 역시 거대한 이념이라기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작은 결단에서 시작된다.



감정을 억누르는 순간 자유는 형태를 잃고,

인권을 외면하는 순간 인간을 향한 마음은 금세 메말라 간다. 인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 양단에서의 흔들림은 약함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착하기 위한 가장 인간다운 선택의 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구체적인 장면들의 연속이다. 오래된 기억을 환하게 깨우는 눈빛, 계절의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감정의 파편들,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던진 질문 하나가 마음의 방향을 미세하게 틀어놓는 순간들. 이러한 구체적 장면들은 윤리의 주변부가 아니라 가장 중심부에 선다.



인간의 판단과 선택은 논리적 도식보다 먼저 감정의 패턴에서 작동한다. 감정은 단순히 흔들리는 마음이 아니라 판단의 뿌리에서 작동하는 직관적 인식이다. 그래서 구체적 삶은 윤리가 세워지는 토대이며, 선택이전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는 가장 사람다운 이유이다.



사람다운 태도는 이 모든 과정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지식이 옳고 그름의 구조를 알려줄 수는 있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 납득하게 만드는 힘은 사람다운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람다운 태도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게 하고, 낯선 감정을 받아들일 여유를 제공하며, 자기 내부의 그늘을 회피하지 않도록 돕는다. 이 태도가 깊어질수록 인간은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관계를 도구처럼 소비하지 않으며, 책임을 나누는 마음의 폭을 익히게 된다. 결국 사람다운 태도는 감정의 섬세함을 회복시키고 인류의 윤리를 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가장 기초적 힘이 된다.



감정은 충동이 아니라 세계를 읽는 또 하나의 인식 체계이다.


두려움은 위험의 구조를 알려주는 직관이고,

분노는 부당함을 감지하는 지성이고,

슬픔은 상실의 의미를 붙잡는 기억이며,

사랑은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오래된 철학적 통찰이다.



감정은 단순 반응이 아니라 판단의 시작이며, 인간이 세계가 유지하고 있는 기존 체계와 맞닿는 유일한 감각적 언어이다. 그래서 감정은 윤리의 바깥이 아니라 윤리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되는 것이다.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감정은 또한 스스로를 갱신하는 힘을 지닌다. 방황처럼 보이는 흔들림조차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조정의 갈등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슬픔은 연민으로,

분노는 정의로,

두려움은 용기로,

사랑은 책임으로 확장된다.


인간은 감정의 이 느린 변환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더 깊어지고, 서로에게 더 따뜻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것이 감정의 순환적 철학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방식이다.



결국 존재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의 빈틈에서 갈등이 울리고, 그 울림 속에서 다시 새로운 이해가 살아나며, 그 진동 속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다시 해석하고 정의해 나간다.

이렇게 감정은 우리의 윤리를 빚어내고, 윤리는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끈다. 이 느린 순환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며, 서로에게 도착하기 위해 우리가 겪는 고요한 성장의 길이다.



그리고 때로는 서로의 다름이 던져놓은 감정의 창과 화살이 서로의 마음을 향해 깊이 파고들 때도 있다. 그 순간 생겨나는 피 흘리는 고통과 미세한 절망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다.

그것은 내 세계의 낡은 껍질이 벗겨지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 다가올 세계의 층위가 드러나는 것이다. 타인의 다름이 나의 빈틈을 찌르는 아픔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더 폭넓은 윤리를 향해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된다.



이 고통들은 새로운 시대의 윤리를 여는 미세한 문틀이며, 그 아픔들을 통과한 마음만이 더 깊은 인간으로 세워진다. 서로의 다름에서 시작된 이 고요한 상처는 결국 우리 모두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밀어 올리는 보이지 않는 인류 윤리의 진보를 위한 기원이 된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갈등, 즉 서로의 다름이 남긴 상처가 있어야만 그 속에서 새로운 인류 윤리의 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좀 더 여유 있는 기다림으로 그 다름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더 깊이 더 오래 껴안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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