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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머무는 자리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by 영업의신조이

5화.

아무도 없다



어느 겨울 아침이었습니다.

새벽어둠이 유난히 깊게 내려앉아 있던 날, 저는 평소처럼 출근을 위해 차에 올랐습니다. 편도 두 시간, 왕복 네 시간 이상의 긴 출퇴근 길을 거의 10여 년 동안 반복해 왔지만, 그날은 무엇인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고속도로 초입에 들어섰을 때,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들이 하늘 아래 희미한 빛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그 빛을 ‘의식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하늘이 아주 서서히 밝아오자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꺼지는 장면을 생전 처음 목격했습니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충격과 정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밀려 올라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이 길을 몇천 번도 넘게 달려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어둠이 짙은 날도, 안개가 자욱한 날도, 늘 같은 길 위를 달려 출근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날 동안 이 가로등은 묵묵히 제 길을 비추어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연하게 지나쳤고, 당연하게 빛을 받았고, 당연하게 도움을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10년이 지난 어느 날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는 것이 제 마음을 조용히 뒤흔들었습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누군가의 헌신과 따뜻한 손길이 내 곁에서 계속 켜져 있었구나.’


그 생각이 순간 불덩이처럼 일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침마다 운전하며 가로등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말이 없고, 고요하며, 빛은 과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이 빛이 어젯밤에도 제 길을 비추어주었음을… 누군가의 감사도 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다시 켜져 있는 존재임을. 그 깨달음 위에서 저는 짧은 시 한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출근길

가로등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새 어두운 길을 밝혀 준 가로등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이도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가로등은

오늘 밤도 다시 켜질 것이다”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이 시는 단지 가로등을 향한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운전석에서 처음 느낀


‘보이지 않는 도움의 세계’


를 향한 제 마음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 도움들 대부분은 인식의 경계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 인지하는 순간, 세상은 그전과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로등은 그 변화의 첫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가로등이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하루 종일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어둠은 늘 가까이에 있고, 그 어둠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더라도 작은 빛 하나로 조금 덜 춥게, 조금 덜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의 길 위에서 이름 없이 켜져 있는 가로등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한 뼘이라도 더 안정되게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빛을 건네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다짐합니다. 제가 받은 빛처럼, 저 역시 누군가의 어둠을 덜어주는 작은 가로등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여러분의 하루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뜻한 빛이 되어주시기를 진심으로 응원드립니다.


그날의 깨달음은 빛을 발견한 순간이었고,

오늘의 달라진 제 행동은 그 빛이 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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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