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전장
거룩
'구분된 삶'
옛사람을 벗지 않으면
새 옷은
끝끝내 몸에 닿지 않는다
벗는다는 것은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묻혀 있던 것을
조용히 드러내는 일이었다
믿음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일
지식
모른다고 말한 뒤
다시 눈을 뜨는 일
절제
하고 싶음을
잠시 안아두는 일
인내
움직이지 않음 속에서
숨소리처럼 자라나는 뿌리
경건
아무도 보지 않아도
조심스럽게 앉아 있는 마음
그리고
사랑
끝까지 남아 있는
가장 조용한 선택
그것들은 입는 것이 아니라
익히는 것이었다
내 안에 남겨진
낡고 어두운 옷감을
한 줄씩 풀어내는 동안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하고 싶던 일들을
한 번씩 내려놓으며
되묻게 된다
지금 이 손끝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이 마음은
무엇에 기대어 서 있는가
나는 그때
한 번 울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나는 ‘거룩’이라는 말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