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전장
터널
(절망의 끝에서)
어떤 길은
들어서기 전엔
그 깊이를 모른다
발끝이
어둠의 입술에 닿는 순간
문은
조용히 닫힌다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숨은 차갑게 식고
습기는 낡은 상처처럼
피부에 달라붙는다
중간쯤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빛이 있었다는 말도
끝이 있었다는 말도
그 자리에서는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문득
나는 걷는 것을 멈춘다
어둠이
내 안쪽까지 스며드는
작은 파열의 순간
그러나
이 어둠을
터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희미한 희망이다
터널이 아닌 것이
진짜 절망이니까
터널이라면
이 고통도
결국
지나간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미세하게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언젠가
아침 햇살이
눈을 덮고
가을의 낙엽이
이름 모를 길 위에
조용히 떨어지고
봄의 벚꽃은
아무 말 없이
세상을 환하게 덮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된다
이 길의 끝은
언제나
빛 쪽이었다는 것을
.
.
.
그리고
그 빛의 힘을 받아
다시 녹음을 펼칠
낙엽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