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존재가 만나 하나의 울림을 만들다
3화.
행운화(行運花) _ 살아 숨 쉬는 철학의 꽃
“감사의 파동이 피워낸 사랑의 순환에 대하여”**
세상은 언제나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그 모든 만남에는 보이지 않는 숨결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행운’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운명’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공유 진동(울림)’이라 부르고 싶다.
서로의 파동이 닿는 순간,
그 공명은 말보다 오래 남고, 이성적 접근보다 더 깊이 울린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마음에 닿은 나의 말 한마디, 눈빛 한 줄기, 손끝의 온기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행운의 존재가 된다.
행운을 주는 존재, 행운아.
‘행운아’란 단순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의 감도를 높이는 사람이다.
그는 삶이 건네는 사소한 일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커피 한 잔의 향기에서도, 낯선 사람의 미소에서도, 하늘의 흐린 구름조차 감사의 대상으로 본다. 그에게 감사는 일상의 언어이며, 경외는 삶에 대한 태도이다.
그는 단순히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존재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행운의 파동을 만들고 상대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
해외 영업의 현장은 언제나 낯선 문화와 언어,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매우 다른 논리 속에서 시작된다.
바이어와의 첫 만남은 종종 이성의 거래 같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관계로 그 결과가 마무리된다.
나는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거래의 시작은 제품이지만, 거래의 지속은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끈에 달려 있다는 것을.
한 번은 독일에서 만난 바이어가 있었다.
계약 막바지까지 모든 조건이 맞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 고개를 저었다.
“조이, 나는 아직 당신을 믿지 못하겠어요.”
그때 나는 서류를 덮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결정이 옳아요. 제가 당신이라도 그랬을 겁니다. 계약 조건을 다시 살펴보고 더 나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거래의 순간이 아니라,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그는 내게 말했다.
“그때 나는 당신의 진심을 봤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죠. 당신이 내게 온 건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하나의 행운이었어요.”
그 말은 나에게도 큰 울림이었다.
결국 해외 영업이란 제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감정의 진동’을 전하는 일임을 그때 배웠다.
우리가 먼저 진심으로 상대를 행운으로 대할 때, 상대는 우리를 신뢰로 되돌려준다.
그 선순환의 시작점이 바로 ‘감사’였다.
상대의 존재만으로도 감사를 느낀다면, 조건이 비록 불만족스러워도 상대가 밉게 보이지 않는다.
감사와 진심이 섞이면 문화와 언어의 벽은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진다.
감사는 곧 인식의 확장을 부른다.
불만은 시야를 좁히지만, 감사는 시야를 넓힌다.
세상은 여전히 같지만, 보는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감사하는 순간,
우리는 사물의 표면만 보지 않는다.
그 존재 안에 숨은 본질을 느끼고 알게 된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존재의 끈을 서로의 마음에 조용히 묶는다.
그것은 의식의 전환이자 존재의 각성이다.
‘행운아’란 이 각성을 이룬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 안의 감각을 깨운다.
그 깨달음이 행동으로, 행동이 관계로, 관계가 세상으로 번져간다.
결국 행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시작되어 밖으로 흘러나가는 파동이다.
이런 진동은 교실에서도 일어난다.
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문제아로 소문난 한 아이에게 늘 지적보다 따뜻한 눈빛을 건넸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 왜 저한테만 그렇게 잘해 주세요?”
선생님은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너는 내게 행운이니까.”
그 말 한마디가 그 아이의 마음에 불을 켰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세상으로부터 ‘행운’이라고 불려본 적 없는 아이였다.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그 아이의 존재의 본연의 가치를 스스로 인지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는 그날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공부가 아니라 마음이 변했고, 방황하던 눈빛이 서서히 따뜻한 빛으로 돌아왔다.
몇 년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선생님의 그 말이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제 안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선생님의 그 따뜻한 한마디, 한 줄기의 인정이 한 존재를 ‘행운화’ 시켰다.
그 아이는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않아도 스스로 빛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행운은 그렇게 전염된다.
한 번 진심으로 누군가를 ‘행운’이라 부르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때부터 행운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유 파동이 된다.
‘행운화’의 삶은 결국 환대의 철학 위에 서 있다.
환대란 단순히 문을 열어주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문을 먼저 여는 일이다.
“당신의 존재는 내게 행운입니다.”
이 말을 마음으로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자다.
그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배우고, 관계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러한 관계의 진동이 깊어질수록 라포는 더 단단해진다. 라포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공명이며, 진심의 진동이다. 그것은 언어로 가르칠 수 없고, 오직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영혼이 조금 더 성숙한 자다.
자동차, 건물, 책상, 펜, 의자, 심지어 매일 켜고 끄는 컴퓨터마저도…
내 존재를 돕고 하루를 완성해 주는 조용한 동반자들이다.
그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존재에 대한 예의이자, 세계를 대하는 품격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감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주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존재의 결은 바뀌고, 삶은 더 단단해지며 마음의 색은 더욱 깊어진다.
세상은 결국 ‘감사의 순환’으로 돌아간다.
내가 보낸 감사의 파동은 어딘가에서 다시 나를 향해 돌아온다.
오늘 내가 웃어준 사람의 웃음이 내일 나를 살릴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건넨 말이 언젠가 다른 형태로 나를 감싸줄 수도 있다.
행운은 그렇게 돌고 돈다.
그것은 언제나 순환의 법칙 안에 살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내가 숨 쉬는 공기에, 나를 비추는 빛에, 그리고 지금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있는 ‘너’에게…
“너는 나의 행운화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언젠가 서로의 마음에 빛으로 남을 것이다.
그 빛이 다시 누군가의 길을 비춘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 존재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의 사랑으로 건넨 ‘행운화’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행운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며, 그 꽃은 다시 향기가 되어 내게 돌아온다.
그 향기는 내 삶을 부드럽게 감싸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든다.
결국 사랑으로 피운 행운의 꽃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는 향기가 된다.
그것이 바로,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가장 고귀한 선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