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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머무는 자리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by 영업의신조이

7화.

그런 바닥 _ 세상의 모든 부모를 위하여...



저에겐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네 살, 다섯 살 즈음의 어린 저는 낮잠에서든 초저녁 잠에서든 눈을 떴을 때, 제 시야 안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 순간의 두려움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고, 저는 방을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며 엄마를 찾았습니다. 집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린 채 동네 구석구석을 헤매며 “엄마! 엄마!”를 부르며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 멀리 서라도 엄마의 실루엣이 보이는 순간, 그 극심했던 공포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한 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않아도, 단지 형체만 발견해도 저는 다시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엄마는 제 삶에 있어 가장 첫 번째 ‘바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우주라는, 지구라는 바닥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받쳐주던 마음의 안정, 바로 그 기반 자체였던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가만히 안기거나 치맛자락만 잡아도 제 마음은 안정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겪었는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그 말하지 않은 감정마저도 이해하시며 조용한 저를 품에 안아 주셨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제 감정의 폭은 더 넓어지고 혼란도 많아졌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지만, 그 혼란을 부모님은 꾸짖음보다는 기다림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시간, 감정을 억누르지 않도록 지켜봐 주는 그 사랑의 시선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유연하고 단단했던 사랑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저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고 옛 세대 사람이라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어떤 결정을 하든 제 선택을 언제나 존중해 주셨습니다.



고정관념의 틀 안에서 판단하지 않으셨고,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먼저 고려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결정할 때도,

직업을 선택할 때도,

부모님의 사랑은 늘 넓고 유연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저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제가 엄마를 찾으며 느꼈던 그 절대적인 불안, 그리고 엄마를 발견하는 순간 사라지던 절대 안정감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를.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경험 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대어 설 수 있는

그런 광활한 바닥


수천 번 넘어져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그런 단단한 바닥


자녀의 꿈을 함께 바라보며 끝없이 지지해 주는

그런 자유로운 바닥


아이의 웃음 하나에 온 인생을 바치는

그런 묵묵한 바닥”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이 문장 속의 ‘바닥’은 곧 부모입니다.

부모는 늘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 삶의 무게를 묵묵히 받쳐주셨습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넘어지는 자리에 언제나 부모라는 단단한 바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높은 곳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바닥에서 시작됩니다. 그 바닥은 넓고, 단단하며, 유연했습니다. 그 바닥 덕분에 저는 넘어질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꿈을 향해 뛸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지금, 저는 조용한 다짐을 품어봅니다.



제가 자라오며 받았던 그 바닥의 사랑을, 저 역시 제 아이에게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어릴 적의 저처럼 아들이 불안에 떨 때 제 모습만 보아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런 부모,


자신을 찾아 사춘기의 터널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부모,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자유를 허락해 주는 넓은 시선과 마음을 지닌 그런 부모,


저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광활한 바닥,

단단한 바닥,

유연한 바닥,

묵묵한 바닥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되는 마음이고,

존재가 존재를 사랑하며 지탱하는 가장 깊은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가장 아래에서 우리를 받쳐주었고, 그 바닥이 있었기에 우리는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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