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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hroot Oct 23. 2021

기쁘고 떳떳하게

김홍주 신부에게 묻다.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통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얻는 이가 있습니다. 내 것 없는 소박한 삶이지만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떳떳하다 말합니다. 한때는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직장 생활도 하며 착실히 자신의 미래를 쌓아가던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를 외면치 않고 따라갔던 그는, 수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스물아홉 늦깎이 신입생으로 신학교에 입학해 이제 4년 차 가톨릭 신부의 길을 걷고 있는 김홍주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흐름과는 정 반대로 흘러가는 그의 일상 속, 중심을 굳게 잡아주는 삶의 근육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내 주위,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GREW-UP 열여섯 번째 에피소드, 김홍주 신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오게 되어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건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천주교의 사제이자, 동성 고등학교에서 남고생들과 함께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는 김홍주 신부라고 합니다.




저 또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웃음)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나요.

10월 첫째 주부터 학생들이 전면 등교를 시작하면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코로나가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일상으로 점차 복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네. 그래서 저는 요즘 학생들과 재밌게 학기를 지내는 중입니다. (웃음)




전면 등교를 시작했군요! 신부님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는데요.




새벽 5시요.

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합니다. 그리곤 팟캐스트에 올라갈 콘텐츠를 만들어요. 글을 쓰고 녹음하는 것까지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죠. 녹음이 끝나면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할 준비를 합니다. 아침 식사는 동성 고등학교에서 재직 중이신 교장 신부님을 포함해 총 4명의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끝내면 학교로 출근해 잠깐 업무를 처리하다 매일 아침 8시에 열리는 미사를 드리러 가고요.



미사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수업이나 다른 업무를 처리하며 학교 일정을 소화합니다. 보통 3시 30분 즈음 끝나는 7교시가 학교 수업 마지막 시간인데, 수업을 끝낸 후엔 보통 잔업을 하다 오후 5시에 퇴근을 하죠. 퇴근 후에는 주변 사람들과 가벼운 술 한 잔을 하기도 하며 개인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이번 달 같은 경우는 천주교 서울 대교구에서 진행하는 강의가 있어 명동 성당으로 가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일과가 모두 끝난 후엔 밤 11시 전에 잠을 청하려 노력하고요.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출처=김홍주 신부]



듣기만 해도 부지런함이 느껴지는 일과입니다.

*본당 신부 같은 경우에는 주말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평일에 자신의 일과를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선 평일에도 학교 일과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 시간이 없죠. 그래서 웬만하면 일찍 자려 합니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본당 신부 : 본당은 교회 행정 단위에서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을 말하며, 본당 신부는 보통 본당 책임자인 주임 신부를 일컫는다.



정말 *리추얼한 삶이네요. (웃음)

신부들의 삶에서 규칙적인 일상은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많게는 10년, 적게는 7년의 신학 교육 과정에서도 가장 첫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규칙적인 생활을 몸에 익히는 거죠.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에 드는 하루 동안, 매일 반복되는 기도와 미사 그리고 공동 식사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삶이 내 몸에 맞아야 신부로 살아갈 수 있고요.


*리추얼(retual) : 의식, 의례라는 뜻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말한다.




신부님의 취미이신 마라톤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루틴을 유지시키는 비결이 아닐까란 생각도 하게 되네요. 마라톤은 요즘에도 계속하고 계시지요.

하하. 마라톤이요. 네 하고 있죠. 코로나 때문에 마라톤 대회를 나가지 못했다가 언택트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어요. 공식 대회는 2년 만이었네요.




마라톤을 시작하신지는 꽤 되셨다고요.

2014년부터 시작했죠. 나름대로 좋은 취미로 지금까지 계속 함께하고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고요.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마주해야 하다 보니 천주교 신부들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게 중요해요. 또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는 신분이기 때문에 비용이 크게 들지 않으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취미이기도 하지요.

김홍주 신부는 2014년부터 마라톤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김홍주 신부]



스물아홉의 나이로 신학교에 입학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기 전에는 어떤 청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제가 되기 전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동국대학교에서 식품자원경제학을 전공했고, 이후엔 신한은행에 입사해 은행원으로 1년 4개월 정도 일을 하기도 했어요. 처음부터 신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모태신앙이라고 하죠. 어릴 적부터 천주교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고서도 꾸준히 주일마다 교사 봉사를 하며 성도로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어릴 적부터 사제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계시진 않으셨군요.

맞아요. 신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직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가지기 시작했어요.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직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그러던 와중 故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 나도,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게 됐습니다.


그 마음은 점점 더 커져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나를 던질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삶을 정말로 살고 싶게 했어요. 그렇게 가족 몰래 직장을 다니며 예비 신학교에 입학하게 됐죠. (신학교에 다니려면 예비 신학교 1년을 다녀야 한다.)

故이태석 신부의 삶을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 스틸컷 中- 故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 의료와 봉사 활동으로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린다. [사진출처=네이버영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하셨다니, 의지가 대단하셨군요.

머리로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정말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내 모든 걸 다 내어놓는 삶이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입학 준비를 하면서도 어머니는 홀로 계시고, 제가 어머니를 챙겨드려야 하는 외부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 안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했죠. 이후에 신학교에 입학해 7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도 한 번도 신학교를 그만두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만큼 제 마음을 따라간 일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신부가 되신 지는..

네. 이제 4년 차 됐죠. 이제 4년 끝나갑니다.



그전엔 화곡동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화곡 2동 성당에 1년 있었고, 여기 동성 고등학교에서 이제 3년이네요.



본당, 혹은 그 외 학교와 같은 활동지로 이동하는 부분은 신부 개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인가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저희 신부들의 대표 개념으로 교구를 관할하는 주교님이 계시는데요. 주교님께서 인사를 책임지십니다. 물론 인사를 결정할 때 신부 개개인의 성향이나 특화된 영역 등 전반적인 요소들을 고려하는데요. 저와 같은 경우에는 신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관련 학부 논문과 석사 논문을 썼어요. 그 과정에서 교직 자격증도 취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교로 인사 발령이 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하셨군요.

네. 처음부터 특별히 생각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고... 우연치 않은 기회였죠. 사실 저는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웃음)



철학이요?

신학과 2학년 때쯤 되면 교직과목을 신청할 수 있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교직과목을 배워서 나쁠 것 없지'라는 가벼운 생각에 교직과목을 신청한 건데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흥미가 생기는 거예요. 또, 교육학을 배우며 왜 교육이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 기본이 되어야 하고,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학교를 주제로 학사 논문과 석사 논문까지 쓰게 된 거고요. (웃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김홍주 신부는 단 한 번도 신학교 입학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진출처=김홍주]


그런 과정들을 거치셨군요. 학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저는 종교 교사에요. 학교가 가톨릭 학교다 보니 종교 과목이 따로 있어요. 거기서 저는 종교 수업을 가르치고요. 신부로서 학교에서 하는 일은 그 외에도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상담도 진행하고요. 연례행사로 열리는 개학식, 종업식을 미사로 진행하거나, 매년 40명에서 50명씩 세례를 통해 1년에 한 번씩 학생들의 입교를 돕습니다. 대부분 가톨릭적인 업무들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또 홈페이지 관리나 SNS 관리 페이지 구축 같은 특별한 보직들도 있고요. (웃음) 방송반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너무 많지요.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저는 이곳으로 부임을 받자마자 만난 친구가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네요.



어떤 친구였나요?

입시의 부담감에 짓눌려 생의 절벽에 위태롭게 서있던 친구였습니다. 상담을 하고, 함께 병원을 가면서 친구의 마음이 나아지는 과정들을 함께 했죠. 그 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네요. 다행히 그 친구는 많이 좋아졌어요. 저 또한 그 시간들을 통해 '학교가 있어야 될 이유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들을 몸소 느꼈습니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다양한 자아들과 생각들을 밖으로 내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요즘 시대의 메시지와 달리 신부님의 삶은 정 반대로 흐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각기 다른 맥락과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매니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시대에서는 특히 개인의 정체성도 중요하고 그것들을 잘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시대 안에서 빛을 잃어가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해, 인내, 배려, 용서, 이런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가치들을 모두에게 강요할 수 없어요. 희생을 강요하는 건 상대방에게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자신이 먼저 그것들을 살아내며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다면, 마음이 닿은 누군가의 삶은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가치들. 그러니까 진리들을 몸소 살아내며 인간의 문화 안에서 지켜내는 존재라고요.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내려놓고 희생하며 인내하는 일. 어떻게 보면 손해이고, 말도 안도는 바보 같은 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오히려 나누고 나를 내어던지는 일을 통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기쁨을 통해 사제로서의 삶이 너무나 행복하고 떳떳합니다.



방금 사제로서의 삶이 떳떳하시다고 하셨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제는 재산을 제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사제의 신분으론 집 또한 소유할 수 없지요. 소박하게 삶을 살기 위해, 또 진리의 가치들을 몸소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들은 스스로의 떳떳함을 만들어 냅니다. 떳떳함은 그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할 수 있는 굳은 심지를 선물하지요. 강한 사람이건, 약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렇기에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것이지요.

사제로 살며 매일매일이 행복하다는 김홍주 신부 [사진출처=김홍주 신부]



신부님이 생각하는 성숙한 삶이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성숙한 삶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성숙한 사람들은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나타내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주교가 도움이 된다. 하하.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웃음) 하지만 무신론자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그렇다 라면 저는 '양심'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심은 삶을 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줘요.


바쁘게 사는 일상 속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이 된다면 나의 말과 행동을 한번 돌아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도움은 되지 않았는지. 곱씹다 보면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자랄 수 있다 생각합니다.



'나는 성숙한 사람인가'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모든 인터뷰이님께 똑같이 드리는 질문인데요. 훗날 어떤 사람, 어떤 사제로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저는 꿈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소원일까요?

선배 신부들이 먼저 걸어갔던 길을 따라 단조롭고 단순하게 살다, 익명의 사제로 눈을 감는 것이 제 소원이자 마지막 꿈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하나 남았는데요.

네.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고3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청소년 시기는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기에요. 가톨릭의 돈 보스코라는 성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청소년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고요. 정말 소중하고,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인 여러분께서 지금 이 시간을 잘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grew-up ep.16 interviewee 김홍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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