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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hroot Nov 06. 2021

사랑에 빠지면 보이는 것들

엄마,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 최지예에게 묻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에겐 레이더망이 하나 생겨납니다. 레이더망이 어찌나 성능이 좋은지, 짧은 찰나의 순간은 물론 티끌까지 모조리 포착하지요. 그리고 전과 다름없는 일상 속에 수많은 존재들이 꽃을 피워내듯 이 세상을 채워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고양이를 키운 후부터 거리에 이렇게나 많은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것처럼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일상의 따스함을 그녀만의 오색찬란한 빛깔로 담아내는 4살 아이의 엄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최지예 작가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낳고 타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라는 그녀의 세계 속 레이더망은 어떤 존재들을 포착해 낼까요? 그리고 출산을 통해 얻어낸 그녀의 성숙은 어떤 모습일까요.


내 주위,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GREW-UP.

열일곱 번째 에피소드<사랑에 빠지면 보이는 것들>을 전합니다.



이곳 정말 평화롭네요.

조용하죠. 이 동네의 고요함을 참 좋아해요. (웃음)

인터뷰를 진행했던 영주시립도서관 북 카페


그러고 보니 고요함을 정말 오랜만에 느낀 것 같아요.

서울은 어디를 가도 정신이 없으니까요. 결혼 전 서울에 오고 가며 직장 생활을 했을 땐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져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었어요. 영주는 그에 반해 사람이 적어서 여유롭죠.



영주엔 언제 내려오셨어요?

김포에 있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남편을 따라 영주로 내려왔어요. 아이가 4살이네요.



그전에는 다른 지역에 계셨군요.

아이를 낳기 전엔 경기도 쪽에 있었어요. 지금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 본 경험도 있고요. 결혼 전엔 정말 에너지가 넘쳐서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해봤던 것 같아요. 일본 유학도 가고, 레스토랑 주방 일도 해보고, 프리마켓 셀러로도 자주 참여했어요. 그러고 보니 시간 날 때마다 여행도 자주 갔었네요.



여행이요.

퇴사 후에 공모전에서 탄 상금으로 인도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지금 남편을 만났죠. 친구들한테 이 이야길 말하면 영화 김종욱 찾기를 말하더라고요. (웃음)



하하. 안 그래도 그 이야길 하려 했어요.

처음부터 반해서 연인이 된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같이 여행 간 언니와 셋이 자주 놀았는데, 언제부턴가 정신을 차려보니 둘이서만 놀고 있더라고요. 하하.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한 케이스에요.


지예의 가족사진. 인도 바라나시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사진제공=최지예]


인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시고, 결혼 후에 영주에 내려오셨군요.

맞아요. 그래서 출산 이후엔 한동안 우울했어요. 영주가 제가 살던 동네가 아닌 것도 있었지만, 결혼 전에는 평범하게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들을 더 이상 만끽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살다 보니 지금의 일상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일상의 균형도 맞춰졌고요. 지금의 일상은 안정적이에요. 일단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나면 삶이 급격하게 좋아져요. 하하. 아이가 정말 사랑스럽지만 24시간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거든요.



갓난쟁이에게 한 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어린이집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중요한 기관이다. 하하.



그럼 육아일기 <자식농사>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겠네요.

그렇죠.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그렸으니까요. 영주에 막상 내려오니 친정 엄마도 멀리 있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되나 너무 막막했어요.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별로 없었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육아에 관한 정보란 정보는 정말 많이 찾아봤던 것 같아요. 그때 한창 열심히 들었던 게 소아 정신과 의사 서천석 박사님의 팟캐스트였죠. 어느 편인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서천석 박사님이 ‘자식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선 기록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기록을 하다 보면 육아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고, 파악을 해야 앞으로 나갈 길이 보인다고요. 그래서 육아일기를 그때부터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제가 잘하는 일이 그림이니까, 짧게나마 그림으로 아이와 함께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기록했죠.


육아 일기 <자식농사>는 매주 수요일마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업로드된다. [사진제공=최지예]



실제로 육아 일기가 육아에 도움이 되셨나요?

그런 것 같아요. 육아를 하는 와중엔 정신이 없다 보니, 제가 하는 행동에 대해 인지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육아 일기를 쓰다 보면 아이와 제가 겪었던 상황에 대해 찬찬히 기억을 되짚게 되니까 놓쳤던 것들에 대해 알아 차릴 때가 많아요. 아이에게 이런 행동, 이런 말을 조심해야겠다. 다짐을 하게 되죠.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되고요.



해주신 이야기 이번 그루업 주제와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섭외에 응해 주시면서 ‘출산 이후 스스로 성숙해졌다고 많이 느낀다’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성숙함이었는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타인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 그렇게 턱이 많아요. 정말 불편하거든요. 예전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 익숙한 풍경일 뿐인데, 이젠 ‘휠체어를 타는 분들은 이 거리를 어떻게 오고 갈까? 불편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개선되려면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게 되고, 그 고민은 또 자연스럽게 일상 속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아이를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사람답게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항상 해요. 그렇게 키우려면 먼저 제가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스스로의 모습을 자주, 더 많이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런 자세들이 생겼어요. 모든 생활에서요.



정말 긍정적인 변화네요.

맞아요. 저는 사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불편한 마음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왜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거리에 강아지들만 보이잖아요. (웃음)



맞아요! (웃음)

강아지 키우세요?



고양이를 키운 지 3년 정도 됐어요. 지예님의 말에 정말 백 번 공감해요. 저도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길고양이들이 주위에 이렇게 많다는 걸 새삼 알게 됐거든요. 아이들의 습성이나 행동을 이해하게 되니 더 마음이 가고요.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사료라도 챙겨주고 싶어 집 나가기 전에 뭐라도 주섬주섬 챙기게 되는 거 있죠. (웃음)

맞아요. 그런 것처럼 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와요. 어느 땐 공원에 있는데 엄마와 아이들이 보이더라고요. 아이가 셋 정도 되었는데, 한 아이가 다리가 불편해 보였죠. 그런데 엄마가 부축해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다시 나머지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더라고요. 왜 아이를 혼자 차에 태운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하지만 넘겨짚긴 너무 조심스러워 혼자 애를 태웠던 기억이 있죠.



아이를 키우며,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과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네요.

맞아요.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있어요.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가 눈을 뜨기 시작할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줬어요. 그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지금까지 아이가 책을 정말 좋아해요. 이젠 한글 읽을 줄 아니 전집을 하나 사러 갔는데, 책을 살 때 판매자분께서 그런 이야길 하시더라고요. 곤충 책을 읽어 주실 땐 징그럽다는 말이나 표정을 짓지 말라고요. 아이에게 곤충은 징그럽다는 선입견을 줄 수 있대요.



그렇지만 전집에 있는 곤충들 사진은 정말.. 입체적이잖아요.

진짜 너무 싫어하거든요. (웃음) 그렇지만 아이에겐 편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 책을 읽어줄 때마다 꾹꾹 참았거든요. 그랬더니 아이가 곤충을 정말 좋아하게 된 거예요. 지금도 30분 거리에 있는 곤충 박물관에 매주 같이 갈 정도로요. 그리고 참 신기한 게, 저도 그림책 작업을 할 때마다 곤충들을 하나씩 그려놓고 있더라고요. 그렇게나 싫어하던 곤충들을요. 숲을 그리면 거기에 무당벌레, 사마귀, 메뚜기를 그리는 제 모습을 보면서 그때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느꼈죠.



아이 덕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네요.

맞아요. 그래서 성숙이란 건 삶의 시야가 넓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젠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 메뚜기가 있으면 아이가 그래요. ‘엄마 이거 팔공산 밑들이 메뚜기 아니에요?’라고요. 하하. 그럼 저도 ‘음. 맞는 거 같은데?’라고 받아칠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거예요. (웃음) 무당벌레도 이렇게 종류가 많은 지도 처음 알았어요. 칠성무당벌레, 28점박이 무당벌레, 남생이 무당벌레… 어느 날은 혼자 걷는데도 무당벌레 알하고 애벌레가 보이더라고요. 하하. 그때 제 자신에게 너무 놀랐어요. 내가 이런 걸 안다고? 하면서요. 언젠가 책도 내보고 싶고요.


아이와 함께 하며 삶의 시야가 넓어졌다. [사진제공=최지예]



책이요. 그러고 보니 그림책을 준비 중이시죠.

네. 그림책 작가가 제 오랜 꿈이었는데, 계속 공부를 하다 작년 겨울에 운이 좋게 투고를 해서 지금 시공사와 계약을 맺었어요. 내년 5월에 발간될 예정이에요.



축하드려요. 제 인생 책 중 하나가 그림책이에요. <100만 번 산 고양이>라고, 정말 감명 깊게 읽었어요.

사노 요코 작가의 100만 번 산 고양이, 맞죠? 저도 좋아해요.



맞아요.

그림책이 정말 종합 예술이에요. 대학 때부터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서 수업도 많이 듣고, 사기도 많이 샀어요. 깊게 배워보고 싶어서 아카데미도 다니며 공부도 많이 했죠.



자료 조사를 하다 작가님의 그림책 <안-녕 꼭지야>를 봤는데 정말 오랫동안 여운이 길게 남더라고요.

아. 그걸 보셨군요. (웃음) 그림책은 아니고, 저의 첫 *더미에요. 그래서 정작 저는 못 보는데.. 많은 분들이 <안-녕 꼭지야>를 보시고 슬프다고 이야길 하시더라고요. 그도 그럴게 더미를 그릴 때 제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했거든요.

*더미 : 가제본을 지칭하는 말.



지예 작가의 첫 더미 <안-녕 꼭지야>. 16년 간 함께 했던 반려견 꼭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출처=Grafolio @gogokoala]

특히 마지막 장이 인상 깊었어요.

꼭지가 어릴 땐 반짝이는 갈색 털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나이를 먹을수록 푸석푸석 윤기를 잃더라고요. 그게 꼭 갈대숲 같아서. 마지막 장을 갈대밭 사이에 잠이 드는 것처럼 표현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준비하시는 그림책의 주인공은 남자 아이더라고요.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니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으시는 것 같았어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지? (웃음)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림책은 밝은 이야기예요.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에요. 아이를 낳기 전엔 제 뮤즈가 남자친구였어요. 지금의 남편이요. 연애를 7년 정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 시기 동안엔 자연스럽게 연인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많이 담았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은 안 그려요. 하하.



지금의 뮤즈는 묻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겠어요.

하하.




이제 두 가지 질문이 남았는데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군요.



출산을 생각하거나 앞둔 이들에게, 작가님이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 작년 한 기관에서 진행하는 창작자 컨설팅 사업에 붙었어요. 출판사가 용인에 있어서 영주와 용인을 오고 가야 할 상황이었죠. 다행히 시어머니와 남편이 배려해 준 덕에 무사히 컨설팅을 모두 받을 수 있었고, 그 시간 덕분에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림책 작가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됐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엔 작은 선택에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무모해 보여도 과감한 선택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삶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요.



삶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의 다양한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지예 작가님의 소개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칠까 하는데요.

아 네. 안 그래도 제가 자기소개를 살짝 적어왔는데요. 하하.



부담 없이 이야기해 주세요. (웃음)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최지예입니다. 여러 가지 그림이 필요한 곳에 그림을 그리고 4살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육아일기 <자식농사>를 연재하고 있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grew-up ep.17 interviewee 일러스트레이터 최지예




일상의 따스함을 그린

그녀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gogoko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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