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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ul 27. 2022

엄마에게 빚을 갚으러 갑니다.

 원피스 배달 왔어요.


"바쁘니?" 전화를 걸어서 나에게 건네는 엄마의 첫마디다. 늘 바쁘게 살았던 엄마가 쉬는 게 뭔지 모르고 사는 딸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다. 혹시나 일에 방해될까 낮에는 전화를 잘 안 하신다.  

"별일 없지?"

"어,  말해도 돼."

"별거는 아니고 너 연수 또 언제 오니?"

"연수는 2주 후에 갈 건데."

"그럼 올 때 여름 원피스 하나 만들어 올 수 있어?"

"예쁜 걸 사줄게."

"사 입는 건 다 커서 줄여야 하고 해서 그랴. 재봉틀도 고장 나고 눈도 안 보여서 고치기도 힘들어. 바쁘면 하지 말고."

"어떤 스타일?"

"아니 뭐  그냥 만들어. 소매는 칠부로 하고 목은 카라 없이 혀. 카라 있으면 더워."

"더 원하는 건 없어?"

"길이는 무릎에서 한 뼘만 내려오게 하면 되지 뭐. 아, 원단은 지난번에  파자마 만들어 준  그걸로 하면 시원하던데."

"뭐 그냥 만들라면서 요구가 많."

"그런가? 흐흐흐."  


50년 전에 엄마는 시집올 때 가져온 재봉틀로 내 옷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도 대청마루 끝에 있던 재봉틀에 앉아서  연신 발을  움직이며 바느질을 하시고  하얀 치아로  실을  끊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분홍색 잔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내게 입혀 주시면서  이쁘다고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행복했던 모습으로 으뜸이다. 양점을 하던 막내 이모네서 가져온 자투리 원단으로 우리들 옷을 만들어 입혀주셨다. 만들어주는 옷이 매번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딱 지금 내 딸의 모습이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 손재주가 좀 있다. 그러고 보니 중. 고등학교 가정 가사 시간에 칭찬을 많이 받았다. "너는 보기하고 다르게 바느질을 잘한다." 하시던 선생님의 말은 분명 칭찬이었겠지? 바지단 줄이기가 시작이 되어서 독학으로  20년 가까이 바느질을 취미로 한다.


50년이 지나 엄마는  나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듯 원피스를 만들어 달라고 하신다. 누구보다 까다로운 주문서를 내놓으셨다. 일터를 바꾸면서 

작업복에서 간단한 외출복이 필요하신 것 같다. 몸이 작고 작아져서 기성복도 딱 맞는 것 찾기가 어렵다. 나는 원단을 주문했다. 엄마가 말씀하신 인견으로 골랐다. 추가로 기성 원피스도 주문했다. 줄여서 가져갈 생각이다.


엄마가 내 옷을 만들면서 나를 수십 번 생각하고 내 몸에 맞는 옷을 위해서 나를  만지고 또 살펴야 하셨다. 그리고 그 옷에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옷을 만들어  내게 입혀주셨다. 그 어떤  신명한 무당이 그려준  부적보다도 강력한 엄마의 사랑이 집중한 부적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도 이런 마음으로 동료 선생님들이 아기를 출산하면 축하금 대신 배넷저고리와 이불, 한복을 만들어서 선물을 하기한다. 기성복보다 예쁘지 않아도 내 진짜 마음을 담은 선물인 것은 분명하다.


패턴을 그리고 재단을 하고 오버룩을 치고 재봉틀을 돌린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보면서 만들 수 있을 텐데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늘 이 옷을 가지고 여름휴가를 친정으로 간다.

 "와! 엄마 대박.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겠다." 딸이 옷을 입고 거실을 돌아다니면서 내 칭찬을 한다.


나는 앞으로 몇 벌이나 엄마께 옷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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