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 지내, 괜찮아, 수고했어

by COSMO

전송 버튼 앞에서 멈춘 이유


퇴근길 카페의 구석 자리는 늘 내 은신처였다. 창밖으로 분주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따라 핸드폰이 무겁게 느껴졌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지원이의 프로필 사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최근 SNS에서 본 그녀는 많이 지쳐 보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힘겨워하는 게 글 사이사이로 읽혔다.


메시지창을 열고 한참을 고민하다 천천히 타이핑했다. "지원아, 잘 지내?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던데... 괜찮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오늘도 수고 많았어." 하지만 전송 버튼 위에 올려놓은 엄지손가락이 굳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연락이 부담스러울까? 오지랖처럼 느껴질까? 아니면 내가 뭔데 위로한다고 나서는 걸까?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결국 백스페이스를 길게 눌렀다. 하얀 메시지창이 다시 텅 비었다. 우리는 종종 가장 필요한 말을 가장 전하기 어려워한다. 마치 진심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까 봐.


카페를 나서며 쓰레기통에 버린 테이크아웃 컵처럼, 나도 그 말들을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버렸다. 하지만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묘한 아쉬움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가로등 불빛이 만든 긴 그림자가 내 망설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위로의 언어를 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 침묵이 서로를 얼마나 더 외롭게 만들고 있을까. 현관문을 열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도 나는 용기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며칠이 지나도 그날의 메시지창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말 오후,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다가 시든 잎사귀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원이에게 보내려 했던 그 말들, 사실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잘 지내?" -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던 안부. "괜찮아" - 스스로에게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위로. "수고했어" - 인정받지 못한 채 쌓여만 가는 일상의 무게.


프리랜서로 전환한 후 3년, 나는 늘 괜찮은 척 살아왔다. 불안정한 수입에도, 외로운 작업 시간에도,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의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작은 아이 같은 갈망이었다. 우리가 타인에게 건네고 싶은 언어는 종종 우리 자신이 가장 목마르게 기다리는 울림이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타인으로 착각하듯, 우리는 내면의 갈증을 밖으로 투사한다.


화분의 흙을 만지며 생각했다. 어쩌면 지원이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온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현대인의 소통이란 이런 것인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정작 가슴속 깊은 곳의 목소리는 닿지 못하는. 물을 머금은 흙에서 올라오는 촉촉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식물도 말없이 자신의 필요를 전하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서툴까.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갑자기 쓸쓸해 보였다. 저 수많은 창문 너머에도 전하지 못한 온기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COSMO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습니다.

1,81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5화오늘 밤, 나를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