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틀렸다. 완벽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틀렸다. 캠퍼스 축제 무대 앞, 스무 살의 눈부심은 무대 조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래하던 선배의 또렷한 이목구비를 향해 쏟아지는 탄성을 들으며, 나는 세상의 공식을 발견한 듯 확신했다. 잘생긴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그 믿음의 단순함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복잡한 세상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달콤한 착각. 서랍 한 칸은 아이돌 브로마이드로 가득 찼고, 거울 앞에서는 턱선의 각도를 재며 한숨을 쉬었다. 남과 비교하는 일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옆모습과 광고판 속 모델의 완벽한 라인을 견주며, 나는 점점 작아졌다. 그때의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다. 표정이 곧 가능성이고, 외모가 곧 미래라고 착각했다.
스물아홉, 첫 월급날 ATM 앞에서 잔고를 확인하며 어깨가 펴졌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얼마 버니?"라는 농담 섞인 질문이 정체성 검문처럼 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줬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가 커질수록 존재감도 커지는 듯했다. 하지만 밤마다 찾아오는 묘한 공허감은 설명할 수 없었다. 카드 명세서를 훑으며 자신을 달래봤지만, 숫자의 위로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러움은 빈자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 빈자리를 더 큰 것으로 메우려 할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내가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본 만큼 욕망하고, 아는 만큼 꿈꾼다. 스무 살의 나에게는 그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캠퍼스의 좁은 세계에서,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하늘은 그만큼이었다. 살아본 만큼만 이해한다는 건, 한계가 아니라 성장의 증거다. 오래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승진에서 밀린 날,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연인과 헤어진 날, 거울 속 내 얼굴이 처음으로 편안해 보였다. 실패가 가르쳐준 진실은 단순했다. 내가 쫓던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엘리베이터, 같은 층수 버튼. 회사 생활은 예측 가능한 리듬으로 흘러갔다. 책상 위 커피 자국이 만든 동심원은 내 하루의 지도였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마저 루틴이 되어, 화요일은 김치찌개, 목요일은 부대찌개로 정해졌다. 이 반복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적어도 내일이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 월급날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찾는 손의 움직임까지 기계적이었다. 안정은 따뜻한 담요 같았다. 하지만 담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을 때, 그것은 감옥이 된다.
어느 회의실에서였다.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가 넘어가는 소리, "이번 분기도 안정적입니다"라는 보고. 한때는 그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칭찬처럼 들렸다. 우수 부서, 모범 사원.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형광등 아래 펼쳐진 엑셀 시트의 숫자들이 갑자기 무덤의 비석처럼 보였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과연 살아있다는 증거일까?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표정이 굳어있었던가. 집에 돌아와 오래된 일기장을 꺼냈다. 5년 전 쓴 목표들. 하나도 이루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 무서운 건, 이제는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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