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순간들> 에필로그
커서가 깜빡이는 빈 화면.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할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다만 이제는 그 빈 공간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여백이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보인다.
몇 달간 매주 금요일 밤, 나는 보이지 않는 당신들과 만났다. 새벽 두 시의 조회수 하나, 출근길의 짧은 댓글 하나, 때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침묵까지도. 그 모든 신호들이 모여 우리만의 주파수를 만들었다. 글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가장 조용한 광장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왜 '말랑한 순간들'인가요?"
딱딱하게 굳어버린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작은 부드러움을 갈망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실패해도 괜찮은 시간, 그저 있는 그대로 숨 쉴 수 있는 여백. 그것이 바로 내가 찾고 싶었던, 그리고 당신과 나누고 싶었던 말랑함이었다.
이 연재를 쓰는 동안 나는 계속 질문했다. 오늘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지친 월요일 아침인가, 홀로 맞는 금요일 밤인가. 그 상상 속의 당신들이 점점 구체적인 얼굴을 갖추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쓴 글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쓴 이야기였다는 것을.
가장 외로운 밤에 쓴 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고,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야기가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 돌아왔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글은 기적처럼 정확히 도착한다. 그것이 글쓰기가 가진 신비로운 힘이다.
"덕분에 오늘을 버텼어요."
"이 글 읽고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이런 메시지들을 받을 때마다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위로를 주려 했는데 위로를 받았고, 빛이 되려 했는데 빛을 발견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등불이었다. 어둠 속에서 작게나마 빛을 내며, 옆 사람의 길을 비추는 존재들.
이제 쉼표를 남겨두려 한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다른 제목으로, 다른 형식으로, 하지만 같은 마음으로. 당신도 그러하길 바란다. 일상 속에서 작은 말랑함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언젠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괜찮아, 나도 그랬어." 그것이 이 연재가 남기고 싶었던 가장 큰 선물이다. 받은 위로를 다시 전하는 마음, 그 연쇄작용이 세상을 조금씩 말랑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읽어줘서 고맙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함께여서, 정말 고맙다.
잘 지내.
그리고 가끔은, 말랑하게.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