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뚜 Mar 10. 2022

그렇게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아빠 시점] 육아휴직을 결심하다. 3편



21세기 과학이 진일보하고 남녀평등이 사회적인 모토인 이 시대에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격려받을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가족들과 직장에 계신 어른들은 걱정과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대다수.

비슷한 나이 또래 친구들은 그래도 좀 나았다. 이해하는 입장이 반,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이 반.


나와 같이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는 남교사로 6개월 육아휴직을 그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시전(?)한 경험이 있었다.



“야, 반응 볼만했겠다?”하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애초에 인천 쪽의 교직문화는 다소 보수적인 편이라고 했다. 그러니 관리자들의 반응은 일단 의심부터 한다.



“그런 식으로 업무 하다가 중간에 자리 비우면 선생님 평판만 안 좋아져요.”



이어지는 복수의 예고.



“이 학교에 오래 있어야 할 텐데 돌아오면 더 힘들 수 있어.”



이런 빈정 상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친구는 아내와 함께 6개월 육아휴직을 했고, 그 시간은 은행과 가까워지는 시기(?)이기 했으나 더없이 찬란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야, 이제 애가 나만 보면 뛰어온다야.” 라며 아빠로서의 자신을 자랑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꼭 육아휴직을 하라며 그것이 우리 직장의 최고의 복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이런 친구가 있다면 다른 친구도 있다.



“육아휴직? 니 뭐 이직하려고?”


“니 혼자 애 보면 제수씨는? 니만 애 보면 와이프 습관 안 좋아질 건데?”


“나이 먹고 애 기저귀 갈고 있으면 후회할 건데?”



공자님이 빙의된 유교남이 등장하여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친구는 변하지 않는다.



“내 애니까 내가 하는 거지 뭐. 특별할 것도 없어. 니도 나중에 이해할 거야.”



그 뒤에는 ‘그런 생각 가지고 있으면 너 결혼하기 힘들다.’라는 내 말이 마음속으로만 울려 퍼졌다.


이쯤 되면 내 삶을 되돌아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름 꼼꼼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건 데 나는 이제 확실한 소수자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육아남’이자 ‘내조남’이니까.


예전에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외침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다른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하나?’

하지만 나도 이제 육아를 하는 남자, 즉 소수자가 되어 보니 그 외침을 이해한다.


소수자로서 받아야 할 필연적인 사회적 조롱, 차가운 시선들이 마음을 난도질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쉽게 누리고 존중받을 권리를 배제당한 채 의무만 강요당한다.

그러니 그들의 외침은 절규가 되고 극단적으로 변할 수밖에.




이제 곧 사랑스러운 우리의 아들이 세상의 빛을 본다.


10달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감내하며 아이를 지켜준 아내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10달의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포기하였을 아내가 자유의 날갯짓을 한껏 펼칠 수 있도록 훌륭한 내조남이 되리라 결심한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게끔 최선을 다하는 육아남이 되리라 결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는 여자가 키워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