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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뚜 Apr 04. 2022

세상 쫄보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다.

겁많고 걱정많은 한 산모의 출산기록

22년 3월의 어느 날.

만두가 태어나기로 한 날이다.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4박 5일 간 병원에서 지낼 짐과 조리원 짐을 동시에 챙겼다. 내 짐은 큰 캐리어로 한가득, 오빠 짐은 작은 캐리어에 한 가득이다. 무섭고, 두렵고, 떨리고.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출산하기로 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열 달 동안 담당했던 주치의 선생님이 아파서 오늘 수술을 다른 원장님이 하게 되었다는 거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복잡한 심경에 복잡한 마음이 +1 추가되었다. 그럼 수술 날짜를 미룰까?라고 묻는 오빠한테 그냥 하겠다고 했다. 이미 좋은 날, 시 다 받아서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울며 겨자 먹기로 여차저차 하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아마 우리 집에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어머님, 아버님이 병원 앞에서 배웅을 해주셨다. 잘 낳고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분만실이 있는 건물 3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수술실'이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띄었다. 캐리어를 달달 끌고 분만실 앞에 도착했다. 분만실 앞에는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우리는 분만실 앞에 있는 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5분쯤 지났을까? 분만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등장했다. PCR 음성 검사 확인 문자를 보여주고 나는 분만실로 들어갔다. 오빠랑 바이 바이 인사를 하고 들어선 분만실 공기는 따뜻했다. 나는 분만실 침대 중 수술실과 가장 가까운 끝쪽 침대를 배정받았다. 간호사는 모든 옷을 탈의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분만실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덥게도 느껴졌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조금 더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흐어어어어어어어어. 엄마아아아아아아아. 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정말 고통에 몸부림치다 못해 울부짖는 소리였다... '아!!!!' 이런 비명 소리가 아니라 '흐어어어어어어' 울부짖는 소리.. 진짜 말 그대로 울부짖는 소리... 한참 동안 그런 소리가 들렸다. 춥다고 했다가 대변을 보고 싶다고 했다가 엄마를 외쳤다가...


갑자기 내 심장이 두 배로 뛰었다. 공포가 몰려왔다. 얼마나 아프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저렇게 울부짖을까.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 그때 젊은 간호사가 등장했다. 제모와 항생제 테스트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자연분만하는 산모들도 같이 있나요?"

"네."

"그럼 저 소리는..."

"자연분만하는 산모님이세요."


  

아... 나는 자연분만했으면 기절했을 거다. 수술 후 겪는 통증(?)으로 인한 소리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제모는 생각보다 굴욕적이진 않았으나 많이 따끔거렸다. 항생제 테스트도 견딜만했다. 그러고선 잠시 대기. 자꾸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뱃속에 있는 만두에게 괜찮다고 말을 걸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에 다시 젊은 간호사 등장. 열심히 내 왼쪽 팔을 주무르고 만지고 하더니 수간호사로 보이는 분을 데리고 왔다. 그분은 능숙하게 내 팔을 몇 번 만지더니 수술용 바늘을 쑥 꽂았다. 항생제 테스트보다 덜 아팠다. 그렇게 내 수술 준비는 끝. 조금 있다가 수술복(?) 같은 걸 입은 오빠가 등장했다.


"오빠..."

"아이고 고생했어. 힘들지?"


오빠와 함께 있으니 긴장과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다.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만실은 어딘가 어수선하고 분주한 것 같았다. 공기가 그랬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도 들렸다. 간호사들끼리 점심은 먹었는지, 오늘 출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오빠가 내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 온기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그렇게 오빠와 수다를 떨며 수술 시간을 기다렸다.


갑자기 수간호사가 등장하더니 오늘 출산하는 산모들이 많아 내 수술시간이 조금 뒤로 밀릴 거라고 했다. 몇 시 안에만 아이를 낳으면 되냐고 묻길래 우리가 받아온 시간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40분쯤 더 기다렸을까? 이제 수술하러 가겠다며 간호사가 오빠를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갈 줄 알았는데 웬걸, 내 두발로 걸어서 수술실로 갔다.


수술실은 작은 방 같았는데 매우 밝았고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수술 후기에서는 수술실 들어서자마자 몸이 덜덜 떨렸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두발로 걸어서, 환자복을 벗고 수술대 위에 앉았다. 마취과 선생님이 등장해서 말을 걸며 하반신 마취를 해주셨다. 긴장된 마음에 크게 숨을 쉬었다. 척추 주사라 엄청 아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주사를 맞는데 오른쪽 다리에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왼쪽 다리도 저릿해졌다.


선생님은 이제 숨을 쉬기 힘들어질 수 있고 기분 나쁜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조금 기다리면 사라질 거라고 말했다.


수술대에 누웠다. 간호사들이 수술부위를 소독하는 게 느껴졌다.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마치.. 쥐 난 다리를 누군가 계속 만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점점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마취과 선생님이 말한 그대로였다! 점점 숨 쉬기가 힘들어졌고 내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내 머릿속은 간호사들이 소독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해줄 의사가 등장한 것 같았다.(수술용 천으로 내 주변을 다 가려놔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음) 그리고 오빠도 수술실에 들어왔다. 오빠가 내 손을 잡아주며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준 덕분에 덜 추웠고, 덜 외로웠으며 더 따뜻했다.

 

의사의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수술은 진행되었다. 가려진 천 사이 밑으로 뭔가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의식은 있었는데 고통은 없었다. 간호사들이 내 몸을 밀기도 하고 내 윗배를 막 누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에 가려진 초록색 천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취과 선생님이 'O시 O분'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간호사의 목소리도 들렸다.


"딸입니다~"



... 네..?


정신없는 와중에 당황한 나는 오빠를 쳐다보았고 오빠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열 달 동안 내 뱃속에 있던 만두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태어날 때 성별 반전도 있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내 머리맡에 서있던 마취과 선생님이 한 말씀하셨다.


"고추 달린 딸도 있나?"

"아...! 죄송합니다. 오늘 수술만 5건 했는데 다 딸이어서 헷갈렸어요. 아들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만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만두가 태어난 것이다! 의식은 있지만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눈물이 나거나 어떤 감동의 리액션은 딱히 없었다. 다만 오빠한테 만두 태어났어?라고 물어봤고 오빠는 응, 고생했다 고맙다 사랑한다 등 러블리한 말들을 잔뜩 해주었다. 그리고 역사적인, 만두와의 첫인사!


내 얼굴 옆에 만두가 왔는데 사실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간호사가 아기랑 뽀뽀하라고 해서 뽀뽀했던 기억만 난다. 뽀뽀하는 와중에 내 입술이 깨끗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기랑 뽀뽀해도 괜찮나? 같은 현실적인 생각만 했다. 허허.


그러고 나서 오빠와 만두는 수술실에서 퇴장. 근데 그때 어깨와 목 사이에 통증이 느껴졌다.


"어.. 선생님.. 목이 아파요..."

"목이 아파요? 너무 긴장해서 그래요. 이제 수면마취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치 수신호가 끊긴 TV처럼 내 기억도 지지직, 끊겼다.




*




덜덜덜. 내가 어딘가 누워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살짝 눈을 떴을 때 위로 밝은 빛과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커튼을 걷고 누군가 등장했다. 오빠였다. 고생 많았다며 위로해주는 오빠. 응. 근데 오빠. 나 어깨가 너무 아파. 어깨 좀 주물러줘.


뒤이어 엄마랑 잠깐 통화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마취가 제대로 안 깬 상태에서 통화를 해서 그런가 보다. 나는 목과 어깨가 아팠고,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침대에 실려서 병실로 이동했는데 오늘 출산한 사람이 많아 예약했던 1인실은 못쓰고 2인실에 배정을 받았다. 병실에 도착해서 누워있는데 목이 정말 말랐다. 물을 마시지 못해 목구멍은 따끔했고 목소리는 걸걸했다. 그 와중에 태어난 만두 얼굴을 보기 위해 TV 면회를 신청했다.


오빠는 만두를 보며 엄청 신기해했고 기뻐했다.

나는 아기 얼굴이 보이긴 했는데 집중이 안됐다. 마취가 덜 풀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기 맞냐는 둥, 왜 울다가 웃냐는 둥 그런 헛소리만 지껄였다.


수술부위가 아팠다. 그리고 반듯이 누워만 있어야 해서 허리도 매우 불편했다.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 주사 놔드릴까요?라고 묻는데, 이 정도 아픔은 참을만해서 안 맞겠다고 했다. 매번 소변통을 비우고 상처 드레싱 해주고 뭔가를 해줄 때마다 진통제 주사 놔드릴까요?라고 묻는데 첫날, 둘째 날 오전까지 나는 진통제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에는 수술 후 아픔과 불편함으로 꼬박 하룻밤을 샜으며... 둘째 날에는 진통제 없이 일어나서 걷고 첫 소변까지 보는 기적 같은 일들을 고통과 함께 해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진통제 주사는 맞는 거였다. 그래서 뒤늦게 무통을 떼고 셋째 날부터 진통제 주사를 맞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나에게 '편두통'이라는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다. 아마 척추마취할 때 목, 어깨에 긴장을 많이 해서 뭔가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누워있으면 괜찮은데 앉거나 일어서기만 하면 머리가 아팠다. 정확히는 머리 편측과 눈, 콧잔등 같은 부위가 아팠다. 그래서 진통제 주사를 맞다가 결국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척추마취 부작용으로 편두통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블러드 패치'라는 시술을 받으면 좋아진다는 글들이 있었다. 시술이든 수술이든 뭔가를 더 받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다행히 이 편두통은 퇴원하는 5일 차 되는 날 말끔히 사라졌다.





*



흔히 사람들이 말하길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맞는 말이다. 정말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다.


2인실에 있을 때 하필 내 옆자리 산모가 자연분만한 사람이었다. 첫 날, 나는 누워서 금식하며 수술 후 고통을 견디고 있을 때 그 분은 미역국에 소불고기 먹으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침대에 앉는 것 조차 힘들어 낑낑대고 있을 때 그 분은 수유콜 받아 신생아실에 아기를 보러 내려갔다. 셋째날, 나는 이제 걸어다닐만 해서 신생아실에 만두를 보러가는데 그 분은 아기를 데리고 퇴원하고 있었다. (물론 회음부 통증을 호소하긴 했으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어 보였다. )


분만실에서 자연분만하는 산모들이 겪는 진통을 생각하면 제왕절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수술 후 회복하는 속도만 놓고보자면 자연분만 할 걸, 아쉬운 마음도 든다.


나는 세상 쫄보에 걱정도 많고 겁도 많은 사람이지만- 이런 나도 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혹여라도 자연분만할까 제왕절개할까 고민하는 산모들이 있다면 그 어떤 선택도 후회하지 않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자연분만은 자연분만대로, 제왕절개는 제왕절개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기에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출산의 고통이 두려워 아기 갖는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임신 전에는 출산이 무서웠는데 막상 겪어보니, 고통은 잠깐일 뿐. 아기가 주는 기쁨과 행복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엄살도 심하고 고통을 견디는 데 취약한 나도 해냈으니 어떤 여성이든 모두 가능할 것이다!


 출산때문에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실 출산 직후에 나는 둘째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느껴보는 고통을 느꼈으나...못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 닮은 아들을 낳았으니, 오빠를 닮은 예쁜 딸도 낳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았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아주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는데,

출산의 고통보다 더 힘들고 극심한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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