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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치치 May 19. 2022

drive my car

비논리적이고 비전문적인 개인적 감상 몇개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1.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중 눈이 나오는 장면은 끝의 몇 장면밖에 없는데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눈이 떠오를 것 같다.


2. 눈.

 눈은 모든 걸 덮는다. 산사태에 무너진 집도, 그 집 안에 두고 온 엄마와 사치도. 눈 쌓인 집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하얗다. 그러나 눈을 걷어내면 검게 젖은 흙이 있고, 무너진 집이 있다.

가후쿠와 미사키 마음 안의 죄책감 또한 녹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의 남은 인생은 여전히 고단하다. 그들의 삶은 결국 (소냐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삶이다. 일을 하며 살다가 길고도 긴 낮과 길고도 긴 밤을 지나 때가 되면 얌전히 죽고. 죽은 후에 하느님에게야 비로소 나 고통받았음을 얘기하는 삶이다. 미사키는 하루를 꼬박 새우며 운전하며 이건 제 일이니까요, 하고 말했다.

'일을 하며 살다가.' 미사키는 그렇게 살다가 얌전히 죽을까. 결국 바냐를 연기하는 가후쿠처럼.


3.

 공연 때, 소냐인 유나가 가후쿠를 뒤에서 끌어안고 수화를 할 때, 발화자는 유나이면서 가후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나는 자신의 가슴을 긋는 대신 가후쿠의 가슴을 긋는다. 유나의 손은 가후쿠의 손처럼 보인다. 그는 듣는 이면서 말하는 이다. 그 위로를 듣는 건, 당연히도 미사키다.


 4.

 소설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가후쿠가 리딩 때 배우들에게 주문하듯, 등장인물들이 꼭 감정 없이 대사를 읽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미사키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뺨의 상처에 대해 말할 때도. 영화 안의 그 누구도 묻지 않는 이야기들을 등장인물이 그냥 말해버린다. 1인칭 시점 소설같이.

나는 중학교 때부터 운전을 했고...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않고, 뺨의 상처는 이러이러해서 생겼고.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지만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았다.

하지만 가후쿠의 "네 잘못이 아냐" 대사에서는 결국 입틀막 할 수밖에 없었다. 하마구치도 결국은 일본인인건지... 그래도 윤수, 유나, 가후쿠, 미사키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윤수가 말한 "침묵은 금이니까요."는 과연 명대사다.


5.

 나는 <아사코>를 정말 재밌게 보았던 사람이지만 5시간짜리 <해피아워>는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사람이다. 단지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는 아니고 진짜 참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하여 <드라이브 마이 카>를 그 둘과 비교해보자면... 아사코 > 드라이브 마이 카 >>>>>>>> 해피아워 정도?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나 <아사코>에 대한 기억이 미화되어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아사코> 볼 때도 중간에 엄청 지루해했던 기억이 있다. 돈 내고 들어왔으니 끝까지는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끝이 좋아서 미화됐을 뿐. 만약 <아사코>를 다시 보면 <드라이브 마이 카>가 더 낫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미장센은 <드라이브 마이 카>가 훨씬 좋았다. 물론 훨씬 옛날 작품이긴 하지만 <해피아워> 를 보고 얼마 되지 않아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더니... 화면에서부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6.

 <해피 아워>에서 보았던 장면들이나 관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는데, 소파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가 잠든 오토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이나, 오토와 다카츠키의 관계 같은 것들이 <해피아워> 후미 커플과 겹쳐졌다. 후미의 남편도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교통사고라는 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재난 같은 것이다. 알람을 마구 울리면서 점점 다가오는 예기되었던 사고가 아니라, 일상 중에 갑작스럽게 맞닥트리는 재난이다. 생각해보면 삶에서의 불행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다가오곤 한다. 중요한 건 그 불행 이후의 삶이다. <해피아워>에서 후미는 남편이 사고를 당한 것이 오히려 고마울지도 모른다고 했다. 새로운 관계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7.

 남에게 운전 맡기는 걸 싫어하는 가후쿠가 미사키에게 핸들을 넘겨준다는 건 누가 봐도 상징적인 일이다. 가후쿠의 목숨을 핸들을 잡고 있는 미사키가 쥐게 되는 것이다. 그건 죽이는 가능성만이 아니라, 살리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또한 가후쿠가 미사키에게 일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갈 수 있는 어떤 힘이기도 한 '일'.


8.

 나 또한 재난 이후의 삶을 항상 생각한다. 그게 지나간 자리에는 뭐가 남는가. 혹시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살아갈 수도 있나, 아니면 흔적이라도 남게 되나. 그렇다면 그 흔적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인간의 어느 부분에 남게 되는 것일까. 머리일까 가슴일까 혹은 장기 어느 깊숙한 곳이어서 나도 모르는 새에 병을 키워가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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