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치치 Jun 09. 2022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MMCA 서울

 히토 슈타이얼을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책 <스크린의 추방자들> 덕분이다. 한창 졸업을 준비하던 3학년 초, 한국에서 거의 마구잡이로 싸온 미술 관련 책들 중에서 <스크린의 추방자들>을 찾아냈다. 모두 이해하기에는 개인의 소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대충이나마 끝까지 훑어보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내용보다 저자가 궁금해졌다. 물론 당시 히토 슈타이얼의 H도 모를 때다.

 

 결론적으로 책은 (이해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 관점에서 애매하게 유익했으나 덕분에 히토 슈타이얼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처음 구글링 해낸 그의 작품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 은 정말로 유익했다. 그러나 당연히 어디에서도 전체 영상을 볼 수는 없었고 단편적인 장면들과 해설로만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걸 다른 어디도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개인전이라는데 어쩐지 작품의 양이 너무 방대했다. 나름 넉넉히 시간을 잡고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모든 영상을 모두 다 보고 나오지 못해서 아쉽다. 사실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뇌의 용량과 체력의 문제였다. 다 보지 못한 몇 개를 뒤로하고 나오는데 와중에도 당이 너무 떨어져서 나오자마자 테라로사로 허겁지겁 달려가 케이크를 몸에 꽂아줘야 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곧바로 파란색 방을 만나게 된다. 작품명은 <미션 완료: 벨란시지>. '렉쳐 퍼포먼스 영상'이라고 되어있는데 전시장에는 세 개의 세로로 된 화면이 있고, 화면에는 각 세 사람이 서 있다. 영상에서 이들이 말하는 '발렌시아가 방식'은 현시대의 방식으로, 실제의 상품보다 소셜 미디어 속 '밈'으로서 파급력을 가지는 패션 데이터를 말한다. 이 방식은 패션을 넘어 정치적,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작품 속 세 사람은 유기적으로 이어진 여러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이에 대해 설명한다. 슈타이얼은 현시대의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를 넘어서 데이터가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내가 생각해오던 20세기 '정보화 사회'의 '정보'보다 훨씬 깊고 유기적으로 설명된다. 개인적인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발렌시아가 2020 SS 쇼장의 형태를 안과 밖으로 설명할 때다. 그제야 나는 이 전시장의 구조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은 내 모습까지도. 안과 밖, 아래와 위. 섞여있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지만 사실은 단 한 번도 무너져 본 적 없는 층위.


 낮은 해상도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 픽셀 속으로 사라진다.

1픽셀보다 작아지면, 화면에서 사라질 수 있다.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이 알려주는 tip. 디지털 시대에 나는 유령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유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슈타이얼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가 <스크린의 추방자들>이고 하나는 <면세 미술>이다.  개를 다시 읽고 재관람하면   많은 것이 보일  같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아도 그의 세계를 온전히 느낄  있는 좋은 전시였다. 일단 압도적인 스케일이 그의 작품에   쉽게 몸과 뇌를 내던질  있게 했고, 이미 단단히 구축되어 있는 슈타이얼의 세계가 친절하게 나를 이끌어  덕분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그의 초기작들도 만나볼  있었다는 점이다. 어디에서부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조금이라도 엿볼  있어 좋았다. 국현을 꾸준히 가지는 못했지만 감히 최근  국현 전시  가장 좋았다고   있겠다. .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의 전화번호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