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치치 Jul 04. 2023

엘리멘탈

짱!


비슷한 시기에 <메이의 새빨간 비밀>과 <엘리멘탈>을 연달아 봤다. 전자는 별점 2.5, 후자는 별점 4.5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게 조금 짠 점수를 준 건,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완성도적인 부분에서 아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못 만들었다는 인상은 없으나 또 특별히 엄청나게 감동한 것도 아니라 결국 그냥 무난한 영화라는 감상만 남았다. 애니메이션만이 줄 수 있는 비주얼적 창의성이 결여되었다는 느낌. 애초에 '인사이드 아웃'이나 '주토피아'같이 추상적 개념을 내세운 이야기가 아니다보니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물론 랫서판다가 된 메이가 너무너무 귀엽고 그 거대함이 줄 수 있는 즐거운 장면이야 많지만 감탄이 나올만큼 황홀했던 경험까지는 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 다만 13살 메이의 고뇌(어쩌면 30살 먹은 나의 고민과도 같은)를 사랑스럽고 유연하게 풀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반대로 <엘리멘탈>에게 높은 점수를 주게 된 것이 바로 그 지점 덕분이다. 애니메이션이 무조건 추상성과 은유에 기대야만 한다는 건 아니지만, 엘리멘탈은 이야기를 비주얼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완성도가 높다. 하나 흘려보내는 장면 없이 꾹꾹 눌러담은 고봉밥을 먹는 기분. 영화를 보는 내내 웨이드라도 된 듯 우느라 진이 다 빠졌지만 '마음의 양식'으로 가득 차서 충만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두 영화 모두 'k-장녀' 혹은 'asian girl' 이라면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에다가 생각보다 주인공이 가진 갈등의 내용도 비슷하다. 다만 차이라 하면 메이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고, 앰버는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인 것이다.

장녀는 아니지만 asian girl 로 30년을 살아 온 바,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당연히 '엄마'에 대한 감정이고, 가업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감정적으로 '착한 딸'이 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라, 메이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앰버는 그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물이다. 나에게는 부모님의 '희생'과 '고생'에 보답하고 싶은 앰버와 사실은 멀리 떠나고 싶어 죄책감을 가지는 앰버, 그리고 나와 너무나도 다른 곳에서 온 웨이드를 사랑하는 앰버의 모습도 있다. 그래서 그녀를 너무 이해하고, 깊이 이입할 수 밖에 없다.


화룡점정은 그것을 시각화하여 은유하는 방법이다. 세련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가끔은 유치해서 좋은.

빛만 있어도, 혹은 물만 있어도 그렇게까지 아름다운 물 그림자는 생길 수 없다는 걸 말하는 영화.


웨이드와 앰버가 사랑하게 되어 다행이다. 균열 사이로 웨이드가 삐져나와 다행이다. 결국 균열은 해묵은 잘못들(예를 들어 얼기설기 짠 배관이나 무너진 수로)을 정비하게 한다. 여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음을, 이 아름다운 도시가 사실은 작은 불씨 하나에도 펑 터질 만큼 연약하게 유지되고 있었음을 똑바로 보게 한다.


사실 앰버는 시티에 나가면 곤란한 일 투성이다. 수시로 다니는 전철(..수철..?)은 지나갈때마다 물을 쏟아붓고, 극장에 가면 밝게 빛나는 몸을 움츠려야한다. 도시를 돌아다닐 때, 불 종족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일것이다. 그러나 내내 그 어떤 약점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웨이드도 앰버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다. 기꺼이 앰버를 끌어안고 수증기가 되는 웨이드는 픽사 영화 이래 가장 로맨틱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물론 모두에게 완벽한 영화란 있을 수 없으니 <엘리멘탈> 또한 그럴것이다. 2023년, 이쯤 되면 픽사의 뻔한 '가족' 이야기에 신물이 났을 수도 있다. 가족을 떼어내고서야 비로소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제, '피'와 '문서'로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마치 '가족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몇가지 면면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앰버가 선택한 길을 응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PC를 향해 가든, 가족주의(혹은 보수적 가족주의)를 향해 가든, 영화가 누군가의 마음을 가장 덜 다치게 하면서도 더 많이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만 바란다. 원래 꿈과 희망을 준다는 일은 그런 거니까.


When we saw animated films, I don't remember translating anything for her.
The medium itself was so powerful and transcendent of language that there were moments that brought her to tears.
It hit me, "Wow, animation can do that."



+

둘이 처음 손을 잡는것도, 키스하는 것도, 혹은 몸 색깔을 바꾸거나 무지개를 보여주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로맨틱한 장면은 웨이드의 몸에 앰버의 모습이 비치던 모든 순간들이었다.

앰버에게 가까이 가면 이글이글 색이 변하는 웨이드의 몸. 낭만 그 잡채.



작가의 이전글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