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
무빙을 봤다. 참 늦었다. 한창 인기를 올릴 때는 안 보던 드라마를 이제야 정주행 했다. 늦게 보는 이유는 여럿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매주 기다리는 게 참 힘들다. 하나 더하자면, 반골 기질이라고 할까?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하는 용기 까지는 아니고, 모두 몰려 갈 때 가지 않은 담담함 정도랄까?
단점은 모두들 즐기며 이야기 나눌 때, 소외된다. 또, 혼자 보기 시작할 때는 모두 기억에서 잊힐 정도니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 그래도 혼자 정주행 하며 '이래서 인기가 있어구나'를 연신 외치며 빠르게 보는 재미를 놓칠 수 없어 버릇을 유지 중이다.
화려한 액션, 캐릭터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룬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글을 쓰니 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모두 본 나로서는 빼어난 작품을 만나 신났다. 대사 하나하나가 감정을 콕콕 찔렀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내던질 수 있는지를 보며 눈물이 찔끔 나기까지 했다.
전체를 다 보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대사가 있다. 초능력을 가진 장주원(류승룡 분)과 황지희(곽선영 분)의 대화다.
장주원은 초능력자다. 국가 정보기관에서 블랙요원이었다. 세상이 바뀌니 기관도 변한 모양이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은 사라졌고, 그는 적성에 맞지 않는 사무직 요원이 되었다. 거기다, 컴퓨터가 보급되어 일을 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버벅거리며 하고, 시간과 노력을 해도 일은 언제나 지지부진하다. 모르는 일 투성이니, 묻는다. 처음에 친절하던 이도 계속되는 질문에 지친다. 주원은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막막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주원은 가족을 위해 꿋꿋이 일을 한다. 마음에 난 상처를 아내인 지희가 모르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부부는 고기를 먹는다. 그때, 힘든 주원이 용기 말을 꺼낸다.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 고개 숙인 주원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
마음이 찌르르했다. 모든 일에 능숙할 수 없다. 모든 상황에 내가 주인공일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숙한 내가 부끄러울 때가 있고, 1인분 역할도 못한다면 작아진다. 시간이 흐른다. 단박에 개선되지 않는다. 그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난 쓸모없는 사람일까?' 질문을 반복할수록 커진다. 세상 전부에서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 된다.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사람. 점점 작아지더니, 존재가 손톱만 해지는 순간. 있다. 있기 마련이다. 쓸모는 무엇일까? 정녕 쓸모 있는 인간이 가치 있는 인간이 될까? 여기서 쓸모가 없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쓸모가 없다는 보장이 있을까? 아니다 단연코.
직장에서 쓸모없다 여겨지는 주원은 지희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남편이고, 친구이며, 서로를 지켜내는 튼튼한 버팀목이다.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적절한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라 믿는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인간의 삶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그 길에 대한 암시다."라 말했다. 내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일 뿐이다.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 테다.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쓸모없다는 되뇌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멈춰야 한다. 피 흘리며 앞으로 갈 수 없다. 타인의 시선, 생각 없는 말로 스스로가 작아져 쓸모를 찾을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자리를 훌훌 털고 잠시만 일어나 보자. 둘러보자. 내가 정녕 아무것에서도 쓸모가 없는 사람인가? 누군가, 작아진 스스로에 힘들어는 분이 있다면, 이 문장을 기억하며, 주위를 둘러보길 바란다.
"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