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시다.
아무것도 안 하게 아니라, 쉰 거야.
쉬는 게 어렵다. 특히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은 더 어렵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이들보다 뒤처지는 기분이고, 무엇이라도 해야 된다는 강박이기도 하다. 마음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착실하게 부채감이 쌓인다. 부채는 이자가 있기 마련이다. 점점 커진다. 결국 불안으로 바뀐다.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은 짧아지고, 무언가를 한다. 멍한 시간을 삭제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방청소, 화장실 청소, 빨래, 설거지를 한다. 몸이 건강해졌다는 기분에 불안은 줄어들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뿌듯함에 걱정은 조각난다. 반짝 거리는 방과 화장실을 보며, 잘 살고 있다고 안도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몸은 힘들다. 힘에 부치게 되면 마음에도 문제가 생긴다. 가장 약한 틈을 뚫고 들어온다. 내게는 목과 어깨다. 글을 쓰고, 실험을 하는 탓인지 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못해 두통으로 이어진다. 다음은 소화기관. 체한다. 두통으로 시작되더니 구역질을 동반한다. 먹었던 모든 음식을 확인하고 나서야 멈춘다. 끝이 아니다. 감기라는 녀석이 와 나를 강제로 쉬게 한다. 두통, 체기, 감기는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병에 숨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쉰다.
마음도 표가 난다. 쉬지 않으니 마음도 쉰 것처럼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우울해지고, 작은 걱정을 키워간다. 머리를 쓰는 일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못 본 척한다. 그렇게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모두 고장 난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피로 사회라고 이름 붙은 한국. 여전히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노동하고 있다. 휴식을 죄처럼 여긴 탓에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예전에 나도 그랬다. 잊은 모양이다. 학위과정과 회사생활로 벅찼던 날들을. 그때처럼 몸도 마음도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하며 쉬는 용기를 내어야 한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쉰 것이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른 분이 있다. 노자. 신묘한 이론까지는 모르겠다. 글자 그대로에 의미가 쏙 들어온다.
서른 개의 바큇살이 가운데로 몰려드네. 가운데가 비어 있어 바퀴가 굴러가네.
진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드나니 속이 비어 있어 그릇이 쓸모 있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나니 속이 비어 있어 방들이 쓸모 있네.
그러므로 있어서 이로운 것은 빈부분의 쓸모 때문.
아무것도 안 함이 바로 쓸모다. 빈 부분이 있어야 다른 일을 할 가능성을 지닌다. 휴식의 미학은 바로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도 무리하며 뛰어가는 나에게, 불안에 떨며 달려가는 나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휴식을 한 거라로. 잠시 쉬어가라고. 늦지 않았고. 괜찮다고."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