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완벽한 매일
감독 : 빔 벤더스
출연 : 야쿠쇼 코지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라는 모두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두 사람의 조합이 꽤 궁금했다. 23년 칸 영화제 수상 결과를 살피는데, 야쿠쇼 코지가 빔 벤더스의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탔다길래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이 작업하게 되었을까? 상당히 궁금해서 개봉일을 기다렸다가 개봉한 주에 봤던 영화다. 그때도 울면서 봤는데,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보니 정말 아름다운, 잘 만든 영화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는 빔 벤더스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길래, 일본에서 영화를 찍고 싶어 진 걸까? 했는데, 도쿄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화장실 홍보 영상을 감독에게 부탁했고(오즈 야스지로 덕후로 유명하다는 것도 이 영화에 대해 파면서 알게 된 정보임) 감독이 장편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서 보름 만에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17일 만에 촬영을 마친 영화라고 한다. (짬이 그만큼 무섭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라는 노년의 남자의 일상을 다룬다. 그 일상에는 삶의 변곡점이 될만한 그 어떤 사건도 없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작은 사건 사고들, 변화들은 있지만 그것이 히라야마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미미하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아니 상당히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주인공인 이 남자의 직업 특성상 영화 속 일상은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좀 나쁘게 표현하면 밋밋할 정도로 고요하다.
히라야마의 직업은 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들리는 이웃의 빗자루질 소리에 잠을 깬다. 일어나서 양치부터, 수염을 다듬고 화분에 물을 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는 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매일 마시는 음료수를 사서 청소도구가 가득 실린 작은 봉고차를 타고 일터로 출발한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먼저 감동하게 된다. 같이 일하는 젊은 남자애는 '이런 일'이라는 표현을, 후에 등장하는 여동생은 '정말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하느냐?'라고 물을 정도로 허드렛일로 취급받는 바로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이 되면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서는 매일 가는 공원에서 조용히 혼자 허기를 달랜다. 늘 들고 다니는 카메라엔 흑백 필름이 담겨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나뭇잎들이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유영하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코모레비)을 매일매일 찍는다. 오후 일까지 마치면 집에 주차를 해놓고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가 몸을 씻고 피로를 달랜다. 이후엔 단골 가게에 가서 단골 메뉴를 먹고, 돌아와서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흐릿한 꿈을 꾸며 잠을 자면 새로운 아침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루틴 속에 매일, 혹은 자주 보게 되는 사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갑자기 등장해 '오늘은 다른 하루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사람도 간혹 만난다.
편의에 따라 이렇게 분류한다고 해도 히라야마는 그들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고 대하며 두 번 이상 얼굴을 보게 된다면 관심도 갖는다. 사람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온기를 담고 바라본다.
그의 일상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서다. 사진 찍기, 독서 외에도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자라나기 힘든 곳에서 싹을 틔운 여리지만 특별한 식물을 조심스레 담아와 키운다. 그는 그가 하는 일에 (청소 도구를 직접 만들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여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게 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삶에 넉넉히 채움으로써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렇다고 히라야마란 사람이 보통(다른) 사람과 구별될 정도로 비범하게 금욕적인 것은 아니다. 어린 여자애의 기습 볼뽀뽀를 받고는 그것을 떠올리며 씩 웃기도 하고, 동료가 갑자기 그만두고 혼자 일을 하게 되자 '이렇게 매일은 못한다'라고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은 여동생의 딸, 그러니까 조카 니코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엄마랑 싸웠냐는 질문에 '비슷해'라고만 답하고 별 말 않는 니코. 삼촌의 일터에 따라가 그가 하는 일을 관찰하고, 다음 날은 그의 일상에 동참하고 경험한다. 그리고 히라야마는 아이를 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강 끝엔 바다가 있어?"
"그렇지."
"지금 갈까?"
".. 다음에."
"다음 언제?"
"다음에."
"다음 언제?"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딸을 데리러 온 여동생과 오랜만에 만나지만 동생은 현재 그의 삶을 부정하는 의미의 말만 할 뿐이다. 다만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한 번 뵈러 가라는 제안에 고개를 가로저음으로 거절을 표하는 히라야마를 보며 그에게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웠던 이들을 만난 후, 그들 없는 일상이 돌아온다.
휴일, 느지막이 일어나 휴일 루틴인 동네 사당에 기도하러 가는데, 터만 남고 사라졌다. 당황했지만 다음 코스인 단골 책방에 가 책을 사고는 늘 들르는 선술집에 가니 문이 닫혀 있다. 순서를 바꿔 빨래방에서 빨래를 돌리며 좀 전에 산 책을 읽는다. 읽으며 기다리다 보며 선술집 여주인이 어떤 남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누굴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제 문을 여는 건가 하고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안을 보니, 두 사람이 꼭 안고 있다. 히라야마는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 장소를 벗어나 대교 아래에서 강을 바라보며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캔을 딴다. 그리고 오랫동안 피우지 않던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기침을 해댄다.
선술집 주인과 꼭 안고 있던 남자가 히라야마 옆에 서서는 자기도 담배 한 대 달라고 한다.
그에게서 듣게 되는 여자의 과거. 자신은 그녀와 7년 전 이혼한 전남편인데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었다고, 그녀를 그냥 보고 싶었다고.
"그림자가 두 개 겹치면 더 진해질까요?"
"글쎄요.."
"그렇군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인생이 끝나는 거군요."
그 말을 듣고 히라야마는 그림자를 겹쳐보자고 한다. 두 사람은 그림자를 겹쳐보지만, 남자는 하나일 때와 두 개가 겹쳐질 때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럴 리가요. 분명히 진해졌어요.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림자 진하기에 대해 결론이 내려지지 않자, 두 사람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우리는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처음 본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자기가 한 행동이 웃겼는지 집으로 돌아오며 히라야마는 웃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어도 쉬이 잠이 들지 않는다.
상념이 가득한 밤이었어도 그 밤이 지나면 또 아침이 온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늘 해왔던 습관들을 반복하고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탓일까,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것들이 기폭제가 되어 지난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에 잠겨서일까. 히라야마는 울 수밖에 없다. 울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 그의 마음에서 요동친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을 보며 그는 웃어본다. 눈물은 주룩주룩 흐르고 있지만 그런데 또 웃고 싶고, 웃어야 하고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그의 오늘이 시작된다.
'잘 사는 것'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싶어 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면, 목표를 달성하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게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매일매일 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걸까?
이 영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준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내 삶을 잘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행복은 행복하겠다는 나의 의지와 결심에서 시작되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히라야마의 하루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오늘을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미해결 된 고통이 있어도, 사랑하는 이들과 단절되어 살아가도 나는 나의 삶을 잘 살아가기로,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하게 살기고 마음을 굳게 먹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영화를 다시 보며 '다음'이란 단어가 뜻하는 바를 생각해 봤다. 그것은 '미래'라는 '시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이란 '지금이 아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바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고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단호하게 걷어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우리의 삶의 질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살아있는 것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발견하며 누리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음으로, 그다음이 지금이 되는 날까지 미뤄두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PERFECT DAYS.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행복하게 잘 살기로 결심한 자에게 주어지는 완벽한 하루.
그 하루가 어떤 특별한 날이 아니기 때문에 Perfect day 가 아니라 Perfect days다.
완벽한 날이 아닌, 완벽한 날들은 내 의지로 만들어진다.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