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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 모든 선택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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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요아킴 트리에

출연 :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슨 다니엘슨 리, 할버트 노르드룸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2021년 작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봤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작품은 처음인데, 영화 초반 주인공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가 진로도, 애인도 계속 바꾸는 모습에 질려 보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보니 꽤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발표된 타임지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에도 선정되어 '그렇구나.' 했다는. 좋은 기회로 영화 관련 커뮤니티의 모임장을 맡게 되었는데, 로맨스 영화 속 인간과 인생이라는 대주제로 이야기 나누기 좋을 것 같아 선택했고, 덕분에 반복해 보면서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계속 바꾼다는 것은 '불만족'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궁극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는 말일 테다.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갈망하고 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율리에는 젊고, 아름답다. 게다가 똑똑하다.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합격했고, 의대 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는 심리학도가 되어 열심히 공부한다. 심리학도 시들해지자 사진을 공부하고, 그렇게 진로를 계속 바꿔가며 하는 공부를 모두 꽤 잘한다. 게다가 늘 율리에를 느끼하게 쳐다보는 남자들도 많으니, 쉬지 않고 연애를 한다.


그러다가 한 남자에게 정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첫번째 남자 주인공 악셀(앤더슨 나이엘슨 리)이다. 아직 20대인 율리에보다 열너덧 살이나 더 많은 40대의 만화가. 나이는 많지만 그만큼 율리에가 바라는 삶의 모양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이다. 자신을 붙잡기보다, 우리 나이 차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놓아주는 그에게 감동한 율리에는 그와 동거하며 진지하게(나름 그녀의 입장에서는) 교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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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얼 잘하는지, 어떤 것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한지 찾지 못한,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자유롭게 경험하고 알고 싶은 율리에와는 달리 악셀은 확실한 직업을 갖고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고, 무얼 잘하는지 무얼 해야 행복한지에 대한 답을 다 찾은 상태라 결혼을 통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한다. 율리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이미 다 경험한 남자는 율리에의 고민이나 방황를 자기 식으로 분석하며 답을 내려준다. 분명 율리에를 사랑하지만 그는 결국 그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반박할 순 없지만, 그래도 율리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찾고 싶다. 언젠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어질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에겐 없는 안정된 삶을 가지고 있는 그이기에 끌린 것이지만, 자꾸 그와 비교하게 되고 그런 자신이 못난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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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에는 악셀의 출판 기념 파티에서 누군가의 인생의 들러리가 된 것 같은 참담함을 느낀다. 먼저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혼자 청승을 떨며 거리를 걷던 율리에는, 파티가 한창인 누군가의 집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일부러 비호감을 자처하고, 그런 자신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다가간다.

'바람 피우는 것'은 안 된다며 나름의 선이랍시고 그어놓고는 이상한 짓을 하는 두 사람.

서로의 겨드랑이 땀냄새를 맡는다든지, 소변 보는 모습을 지켜본다든지 하는..

그러나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아쉽지만 각자의 파트너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것도, 직업을 바꾸는 것도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지만, 딱 한가지 율리에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린 시절 엄마와 이혼하고 새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인데,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할 만큼의 애정을 주지 않으니 늘 아빠에게 감정적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올 것처럼 얘기해놓고는 율리에의 생일 당일 못온다는 전화를 건다.

이유인즉슨 전립선 문제로 장시간 차를 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율리에가 아빠의 집으로 간다. 악셀과 함께.

아빠에게만 저자세로 마음과 달리 '네네'하는 율리에의 모습이 마음 아픈 악셀은 율리에를 대신해 해야할 말들을 한다. 그런 그에게 고마움도 느끼고, 기대고 싶을 만큼 안식처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

두 사람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의 어깨에 기댄 그녀에게 악셀은 이렇게 말한다.


"너도 너만의 가정을 가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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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일하고 있는 서점에서 파티에서 만났던 그 남자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를 우연히 만난 율리에.

에이빈드는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였고, 반가움도 잠시. 씁쓸함을 느낀다. 그러나 서점을 떠났던 에이빈드는 여자친구에게 물건을 두고 왔다며 다시 들어와 율리에에게 말한다.


"당신 생각 많이 했어요. 나는 어디어디에서 일해요."


어떤 '충동'이 생겼을 때 늘 새로 생긴 그 충동을 따라 살았던 율리에는 잘못인 걸 알면서도 악셀에게 이별을 고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내 문제라고.

충격을 받은 악셀은 누가 생겼냐고 묻지만,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처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파트너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악셀은 율리에에게 간절히 매달리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율리에는 악셀을 떠나 에이빈드에게 간다.

악셀을 사랑했지만 동경과 열등감도 동시에 느꼈던 율리에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는 에이빈드에게는 편안함(좋게 말해)을 느끼며 눌러왔던 악동같은 본성을 가감 없이 꺼낸다. 약을 하고, 그것에 힘입어 환영으로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행동을 한다. 그런 자기 모습에 해방감을 느낀 율리에는 다음날 아침 옆에 누워있는 에이빈드에게 고백한다.


"너는 나를 온전하게 해. 사랑해."


그러다가 우연히 TV 토크쇼에 나온 악셀을 보게 되고, 또 우연처럼 악셀의 친구를 만난다. 그런데 그를 통해 듣게 되는 소식은 악셀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껴서인지 그때부터 율리에는 에이빈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율리에가 쓰다 버린 글을 휴지통에서 꺼내 읽고 에이빈드는 마음을 담아 칭찬을 하지만, 그런 말에 만족하지 못한 율리에는 뭐가 어떻게 좋으냐고 캐묻다가 급기야 이렇게까지 말해버린다.


"넌 50살까지 커피나 나르고 싶을지 모르지만 난 더 많은 걸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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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이빈드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율리에는 악셀의 병원을 찾는다. 병문안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시끄러운 속을 악셀과 이야기하며 달래고 싶은 것이다.

임신했다고. 사실, 너에게 이별을 고할 때 이 남자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율리에에게 악셀은 이렇게 말한다.


"전에도 말했듯이, 넌 좋은 엄마가 될거야. 넌 좋은 사람이야."


이후로도 자주 악셀을 찾아가 대화하고 그를 위로하고 자신도 위로받지만 악셀은 자신의 코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물리칠 힘이 없다. 어릴 적 살았던 집에 가보고 싶다는 악셀과 함께 동행하면서 율리에는 오랜만에 사진을 찍는다. 죽음을 앞 둔 악셀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아이가 유산됐음을 느끼며 율리에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다.


이후 영화 촬영장의 스틸 작가로 일하는 율리에.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게 했던 긴 머리도 자르고 마스크로 얼굴도 반쯤 가리고 촬영장 구석에 숨어있듯 서 있다. 촬영이 다 끝나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야 입을 연다. 마주 앉아 있는 배우의 얼굴, 그녀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으며 율리에는 어떤 감정들을 느끼고, 그녀를 데리러 온, 아기를 안고 서 있는 남자가 에이빈드임을 확인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이 다다.


그리고 그녀의 작업실에서 율리에는 방금 본, 에이빈드의 아내가 된 배우의 얼굴. 자신이 찍은 사진속에 커다랗게 존재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일을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명의 남주는 주도성을 기준으로 삼을 때 각각 정반대의 영역에 위치한다. 악셀은 아직 어려서 안정감이 없고 불안하고 거친 율리에를 성숙함으로 받아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자기가 원하는대로 율리에를 이끌어가려고 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기에 그녀도 그것을 원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향해 가야 한다고 믿는다. 반대로 에이빈드는 모든 것을 율리에에게 맞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없고, 그저 그녀와 함께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게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는 모른다.


율리에는 악셀에게서도 에이빈드에게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있는 것 같았지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지만 타인이 그것을 완제품으로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율리에가 '관계를 통해 얻고자 한 것, 갈망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에서 율리에는 진로와 파트너가 같이 바뀐다. 진로를 바꾸면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남자와 연애를 하고, 그것이 반복된다. 물론, 악셀에서 에이빈도로 갈아탈 때는 관계가 먼저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악셀에게서도 자신이 평생 업으로 삼을 일이 무엇일지, 어떤 것을 할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한지,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확신을 가질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눈이 간 것이다.


율리에 자신은 경험이라고 믿는 것 같지만 사실 율리에가 거쳐가는 일들은 '보는 것'에 그치는 것으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뭔가를 '해봤다. 안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실패도, 성취도 해보면서 배우는 단계를 지나, 타인의 도움에 기대어 한두 개 해보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를 책임감을 갖고 맡아보고 주도적으로 해보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율리에가 의대 학업을 중단하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결심할 때, 영화는 율리에가 실습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리학 교수와 잠을 자고 난 후에는 자신이 '시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고 '사진 작가'로 진로를 튼다. 대출을 받아 장비를 사고 사진도 제대로 배우면서 일한다. 오슬로가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자기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았다고 느끼고, 또 그 일을 하면서 만난 모델과 연애도 하지만 파티에서 악셀을 만나 대화하고는 또 갈아탄다. 오히려 자신을 놔주려는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와 살면서는 글을 써본다. 자기가 쓴 글이 괜찮다는 칭찬에 '이건가?' 싶다. 에이빈드와 살 때도 이것저것 글을 쓰지만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악셀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율리에는 다시 카메라를 든다.


사진을 배울 때는 화려함이 잔뜩 묻어난 그야말로 시각적으로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현재의 율리에는 영화의 스틸컷을 찍는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원이라기 보다는 현장에 동행하는 외부인으로서 저들이 만드는 영화를 이해하고 그것이 보여줘야 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배우를, 현장을 진지하게 살핀다.




'나'는 단번에 발견되지 않는다. 타인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일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관계, 그것에서 느끼는 감정 뿐 아니라 그것들을 대하는 내 태도를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발견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계속 선택한다는 것은, 그 속에 나의 갈망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갈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머물며 또 떠난다. 그 모든 선택에 본질적인 동기가 있음을 자각하는 것, 그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를 다시 보니, 처음 사진을 배웠을 때의 율리에가 '단발머리'였던 게 눈에 들어온다. 악셀을 만날 때는 긴 머리를 틀어올렸었다. 그 시간 만큼은 사진을 찍으면서 행복했다는 뜻이다. 비록 화려한 겉모습만 찍어서 뭔가 허전함을 느꼈지만, 악셀과 에이빈드와 글쓰기와 그들과의 이별을 통해 그녀는 다시 사진 작가로 돌아온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 사진을 통해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것을 비로소 찾아낸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선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마도 우리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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