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8과목의 시험을 봤다.
당연히(?) 오픈북 테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살펴보고 답을 외우고 서술형 문제는 준비를 해가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단 뭐든 준비를 해야 현장에서 든든하기 때문이다.
준비하면서 신경 쓰이고 뭔가 괴로운 느낌이 들긴 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던가.
국민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시험의 역사는 지금 이 나이까지 이어오고 있다.
중간, 기말고사가 당연히 있었던 국민학교.
그 나이에 예상 문제를 스스로 50문제씩 만들어가며 시험 준비를 했던 인간이 바로 나다.
숙직을 하시는 막내 이모를 따라 이모가 근무하시는 학교 교정으로 들어서면
밖의 창문에 보이는 짙푸른 녹음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무 책상과 책장에 가득 찬 책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 노력을 중학교 가서 했어야 했는데, 막상 중학교에 가보니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던 시절, 시험은 잘 보고 싶은 마음이 득실득실 하지만 실력은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던 그때. 할 수 있는 거라곤 질투와 노력의 컬래버레이션.
비문학 책이나 더 많이 읽을걸 후회는 되지만 여러 나라의 문학과 함께 했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라리 더 많이 읽었어야 한다는 아쉬움만 있을 뿐. 시험이란 건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다. 다른 누구보다 더 월등히 해야만 하는 비교수치의 일도 아니다. 벌써 학생 때 잊었냐며 반문하는 아들을 보며 말할 수 있는 분명한 한 가지는 시험이란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일', 하여 모르는 부분은 다시 공부하거나 도움을 받아 좀 더 명확성을 갖게 되는 행동이다. 시험 점수로 판단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알기 위해서 시험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건강 검진을 하지 않으면 불치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없듯이 내 공부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 어느 곳에 정차해 있는지 알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결국 시험을 잘 보고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취직을 잘해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냐고 묻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맞지, 돈 중요하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야 한단다. 청소년기에 이 일이다라고 정하는 건 쉽지 않다. 잔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탐색하는 시간조차 함부로 보내버린다면 그건 안될 말이다. 아쉬움과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없으려면 일단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는 어찌 보면 질문이 틀렸다. 현재 내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고 늘 자신이 누구인지 연구해야 한다.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시험은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인생에서 시험처럼 쫄깃함과 긴장감, 열심히라는 것을 펼쳐볼 수 있는 건 찾기 쉽지 않다. 이왕 할 거면 긍정적으로 안 한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니 자괴감은 갖지 말자."
너무나 꼰대 같은 말일지 모르지만, 꼭 긍정심만은 갖고 아이들이 지냈으면 좋겠다.
어떤 순간에 짜릿하고, 어느 장면에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진절머리 나는 시험.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나에게 다가오는 그 시험이란 녀석은 다 이겨줄 테다.
아니, 이긴다는 말보다는 기꺼이 만나줄 테다. 만나야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