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소설 쓰고 앉아있네>
커피를 한 잔 준비했다.
십분 거리에 마트에 가기 싫을 때면 집 앞에 있는 편의점 두 군데 중 한 곳으로 간다.
CU는 원래 있던 곳인데 사장님이 굉장히 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분이다.
말투로 봐선 어느 누구 하나 싸워도 이해될 억양과 표정이다.
청소년 버스 카드를 충전할 때는 의외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살짝 놀라긴 했는데, 오늘 들려보니 다른 분이 계신다.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인가. 이상하게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면 점원분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편의점이어서 그런가.
뭔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기분이다.
새로 생긴 GS25는 새 건물이라 깨끗하고 물건도 더 다양한 인상을 받았다.
오픈빨이라고 텅 비어있던 자리에 들어선 편의점은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는 이곳에서 나름 핫플레이스다.
간식 종류도 더 풍부하고 점원 분도 더 친절한 느낌이다.
평소와 달리 카누 커피 말고 일리 커피를 집어 들었다.
나름 급할 땐 두부도 사고, 네 개 밖에 없는 계란도 살 때가 있다.
마트에 가면 어영부영 두 손이 무거워지는데 이럴 땐 차라리 편의점을 가는 것이 돈이 덜 든다.
딱!! 필요한 것만 사 오기.
계절 탓인가 날씨 탓인가 몸이 으슬으슬 몽롱한데 일리 디카페인 커피는 진해서 마시기에 좋다.
사실 지금 '거룩한 낭비' 중이다.
늦어도 10시 안에는 써야 하는 일지가 있는데, 브런치에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가 문지혁은 이를 '거룩한 낭비'라 부륻다.
밤 12시에서 새벽 4시까지가 작업 시간인 작가는 글을 '쓰기만' 하면 되는데,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넷플릭스를 갑자기 시청하거나 유튜브를 헤매거나 급기야 글쓰기에 재능이 있네 없네까지 가게 되는. 지극히 인간미 넘치는 시간을 보내다 4시 되기 10분을 남겨두고 갑자기 글을 쓰게 된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던가. 기말고사가 코 앞인데 갑자기 소설이 너무나 재밌고 왜 그동안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책들을 읽지 않았나 자신을 탓하는 시간. 책상을 정리하고 일기를 쓴다거나 그러다 결국 새벽녘에 공부를 하다 한참 급불살을 탈 때 잠을 자게 되는 운명의 데스티니.
지금 나의 모습과 어찌 이리도 흡사한가.
대단한 작가님도 나처럼 이런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참 동질감을 느끼며 그래, 이것은 '거룩한 낭비'다. 결코 나의 일을 잊은 것이 아니다 외쳐 본다.
인간은 왜 해야 할 일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가.
심리학적으로 과학적인('적'이 두 번 나왔다)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는 단적으로 글쓰기(어떤 종류의 글쓰기이건)가 시작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다.
'딱 한 문장만 쓰자.'라는 스티븐 킹의 말처럼 그 한 문장만 시작하면 될 것인데.
할 일이 있음을 알지만 하지 않을 때 불편함은 약간 씁쓸하다.
반면에 드는 생각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불붙어서 쓸 수 있다는 뇌의 순진한 생각이다.
뇌와 손은 속도가 달라서 손가락은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자, 이젠 정말 써야 할 시간이다.
어차피 시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싶지만 어휘력은 여기서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몸이 몽글몽글하니 잠이 온다.
아, 거룩한 낭비는 이제 그만.
브런치 스토리에 글도 썼으니 오늘 하고 싶은 일은 거의 다 한 것이 아니던가.
앗, 골반이 아프다.
늘 왼쪽 골반이 말썽인데 비틀어진 내 몸은 약간의 통증 신호를 보낸다.
갑자기 인스타 광고에 겨울 코트가 나오네. 그만 보자. 결제할 것이 아니라면 이제 그만.
충분히 마음을 쏟아냈으니 일지도 완성할 수 있겠지.
한 문장만 시작해 보자.
일필휘지의 경지를 보여주리라,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