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린 내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아고,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하하. 깜짝이야.
요즘 읽고 읽는 책, 천쉐 작가의 <오직 쓰기 위하여>를 보면 좋은 책을 읽기보다 안 써지는 글을 쓰자라고 말한다. 갑자기 학생 때가 생각이 난다. 주로 중고등학교와 대학 때 일 것이다.
시험 때만 되면 어찌나 책이 재밌는지.
공부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눈에 띈 책은 무엇이든 붙잡고 읽는다.
이것은 시험공부를 위한 예열 작업이라 합리화하면서.
어찌나 재밌는 책이 많은지 시험이 끝나면 꼭 쌓아놓고 보리라 결심하지만
시험이 끝난 후엔 친구들과 부어라 마셔라 노느라 또 뒷전이 되는 책이다.
<봉순이 언니>를 읽다가 공부 안 하고 책 읽는 모습에 아빠한테 혼나기도 했다.
과연 난 내 아이들에게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둘째가 넷플릭스에 재미있는 드라마가 한다면 연일 거품을 물고 설명한다. 한국의 아이돌, 의상까지 완벽 고증. 게다가 성우들이 다 한국 사람들인데 영어 대사도 성우가 한다는. 곧 기말고사인 아들은 그 이야기에 빠져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나는 스포일러 하지 말라며 애써 입을 막는다.
글쓰기도 그렇다.
써야 하는 원고는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게다가 한 편 써서 제출한 것은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아서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요즘 에세이를 위주로 읽어서 그 분위기에 젖어 있는 게 글에 티가 났다.
비문학의 설명식 글을 써야 하는데 너무 감성 돋게 써버린 것이다.
진짜 이 물 같은 인간.
소설도 일부러 피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서 드러나고 만다.
소설을 쓸 때는 소설에 푹 빠지고, 에세이를 쓸 때는 에세이에 푹 빠지래서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에세이도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 재밌는, 위트 있는, 살짝 병맛이어도 좋은, 뭐 그런 에세이들을 위주로 읽고 있다. 세상에 글의 종류는 많고, 그 속에서 또 다른 길과 장르가 있다. 언제 다 읽나 생각하다가 어랏. 그럼 내 글도 어떤 장르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처음부터 온갖 글의 장르가 다 생긴 건 아니지 않나. 만들면 그게 장르지 뭐. 오히려 러키윤아다. 아싸, 이건 맥주각이다.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계속 떠들 용기가 생긴다. 오늘은 일이 너무 많아 루틴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했다. 아침에 필사를 해야 하루가 가벼운데, 애들을 보내고 잠을 좀 잔 후 제2의 직장에 다녀왔다. 오후 수업을 위해 2시 10분에 똥줄 타게 달려와 20분 만에 정리를 마치고 수업 준비를 했다.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을 위해 더 단순하게 루틴화시켜야겠다. 운동, 필사, 독서, 일, 쉬기. 양을 늘려서 질적인 것을 채우기.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날 위한 연결점이 나올 것이다. 중요한 건 절대 멈추지 않는 것. 의외로 인간에게 필요한 건 몇 가지 없다.
방 끝 쪽으로 들어가 서너 개 정도 되는 계단을 올라가면 삼각 다리 접이식 간이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그 위에 불이 켜진 기름 램프들과 성상들이 걸려 있다. 그 집은 얼핏 텅 비어 보이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있다. 실상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법이다.
At the far end of the room, one goes up three or four steps to the loft with its three - legged folding bed and above it the holy icons with their lighted oil lamps. The house seems empty to you, yet it has everything. A true human being needs so few things.
-<하루 한 장 일상이 빛이 되는 영어 고전 필사 노트 - 그리스인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