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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by 마음돌봄

아빠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은 휴일이면 꽤나 여기저기 잘 놀러 다녔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가족 여행은

열한 살 때 드라이브 여행이다.

여기저기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

계곡도 갔다가 한없이 산길을 달리기도 하고 멈춰 선 곳에서 식사를 하는 자유 여행.

그때도 어김없이 아빠는 사진을 찍었고, 덕분에 어린 시절 사진이 꽤나 많이 있다.

기억나는 건 사진을 찍으려고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어른들이 '아이고, 아가 예쁘다.' 하는 소리를

듣는 거였는데 지금 내가 지나가는 아기들을 보며 '아고, 귀여워라'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때 날 보던 어른들의 마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포즈를 잡고 사진 찍는 것도 싫고, 지나가는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하는 것도 듣기 싫었던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가장 신나게 사진을 찍은 날이 있다.

바로 웨딩 포토다.

온갖 드레스를 다 입어보고 하루 종일 사진을 찍는 게 어찌나 재밌던지 그땐 20대라 체력이 좋았을까.

지금은 뽀얗게 먼지만 쌓여있는 웨딩사진이지만 결혼식 전에 그걸 안 하면 뭐 큰일 날 거처럼 무조건 촬영을 했었다. 이후엔 나도 아이들 사진만 찍느라 내 사진 찍는 것엔 흥미가 전혀 없어졌다. 일 년에 한 번씩 가족사진 촬영을 하는 시아버님 덕분에 일 년에 하루 사진 속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사진 찍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강사프로필을 내야 한다고 부랴부랴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몇 년 사용하다가 도저히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스튜디오를 예약했다. 드라이도 내가 하고 화장도 평소대로 가려다가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성의를 다하란 말에 메이크업 스튜디오도 처음 예약했다. 검색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비교하며 찾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굉장한 에너지 소모이며 속전속결이 정신건강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나보다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검색해서 나오는 첫 장소, 최근 리뷰가 있다면 그냥 오케이. 물론 광고성 일 수 있으니 잘 살펴볼 것. 사진 스튜디오는 친구의 추천으로 바로 결정. 단 몇 분만에 결정을 했다. 메이크업샵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지하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갔다. 사브작에서 추천받은 권여선 작가의 <술꾼들의 모국어>가 보였으나 꾹 참고 밀리의 서재에 먼저 있나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궁금했던 편성준 작가의 필사 책이 있었지만 역시나 눈물을 머금고 나온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집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읽을 요량으로 구입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미들 마치 1,2권> , 필립 K. 딕의 SF소설과 테드창의 소설까지 줄줄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여전히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아무튼 이젠 4층으로 갈 시간. 도착한 스튜디오는 연예인들 메이크업받는 곳처럼 조명 있는 화장대가 있었고 실제로 공연을 오는 가수들이 메이크업을 받았는지 싸인이 여러 장 보였다. '눈 위로 뜨세요., '눈 무릎 보세요.'를 수십 번쯤 반복하는 메이크업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눈썹도 몇 년 만에 붙이니 어찌나 묵직한지, 거의 눈화장에 엄청난 공을 들인 시간이었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 이래서 연예인들은 원판 불변에 법칙에 더해 나날이 이뻐지는 것인가. 사람은 꾸미기 나름이라더니 신경 좀 쓰고 살아야겠다 싶다가 오늘 들인 돈이 얼마냐 뽕뽑는다 생각이 들더니 여권 사진에 증명사진까지, 프로필도 두 가지로 촬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사진 스튜디오로 향했다. 재킷을 챙기지 않아 강사용 프로필은 살짝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사진을 또 몇 년을 쓸 것이다.






'눈 위로 뜨세요.', '눈 무릎 보세요.'를 또 할 자신이 영, 그래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깔끔하게 사진을 찍은 건 근 몇 년 만이었다. 사진 스튜디오 사장님이 포즈를 잘 취하고 잘한다면 칭찬을 하시니 진짠 줄 알고 더 열심히 촬영을 했다. 눈을 여전히 피곤했고, 미소는 어색했지만 승무원 준비를 하며 웃는 연습을 했던 나름 경력 사원(?)이 아니던가. 그리고 누구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20대의 내가 있었다. 당분간 사진을 이것으로 잘 우려먹어야겠다. 다행히 작가 프로필 사진은 북토크 때 바로 쓸 수 있을 듯싶다. 오늘 사진은 눈도 많이 감지 않았다. 사장님이 보정 작업을 하는 게 덜 힘들겠지. 눈을 파지 않아도 되니까. 오늘 다른 작가님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참고했는데, 이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아련한 표정, 책을 보는 옆모습, 젊음이 느껴지는 MZ 작가들의 개성 있는 옷차림. 흑백 사진 속 분위기 있는 모습까지. 사진도 또 하나의 문학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작가가 작품을 닮아가듯, 사진도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담아 온 것처럼.



*주의 : 강사용 프로필은 정장 재킷이나 셋업 정장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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