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동경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새롭고 재미있는 곳이었다.
11살의 주나에게 서울은 신기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밤에도 불빛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도시.
그곳으로 들어서던 밤이 가끔 떠올랐다.
바삐 돌아가는 시계처럼 이리저리 좋은 물건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시장은
활어처럼 팔딱대는 곳이었다.
노랗게 빨갛게 단풍잎처럼 염색을 한 중학생 언니들은 난간 위에 쪼그려 앉아 버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담배인지 뭔지 모를 하얀 걸 손에 들고서.
동대문 시장의 밤은 낮처럼 환했다.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속에 엄마도 있었다.
방학이면 주나는 엄마를 따라 물건을 사러 갔었다.
고속버스를 저녁에 탄 건 처음이었는데 엄마처럼 지방에서 물건을 떼러 가는 사람들이 모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남대문에 가면 좋아하는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살 생각에 기분도 좋고 설레는 날이었다.
새로운 물건을 가지고 와야 동네에서 팔 수가 있었기에 중요한 일정이었다.
주나는 엄마와 어느 정도 물건을 사서 국숫집에 앉았다. 한쪽 손엔 브로마이드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엄마,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오잖아. 방학이라 나랑 같이 오니까 좋지?"
"그럼 좋지. 덜 심심하고."
"그런데 옷가게 사장님한테는 왜 언니라고 그래? 다 서로 언니라고 하던데."
"그냥 부르는 호칭이야. 여긴 다 그래."
엄마는 몇 살이었을까? 25살에 엄마가 되었으니 마흔도 안된 나이다.
마흔도 안된 여자는 엄마가 되었고, 한 달에 한 번은 판매용 옷을 구매하러 서울로 가곤 했다.
그림을 잘 그렸던 엄마는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막내 삼촌이 성악을 해서 외갓집엔 돈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을 가지 못한 대신 시집을 갔고 결혼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장사를 시작했다.
화장품부터 속옷, 여성복까지 엄마가 사용했다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엄마는 그렇게 번 돈으로 주나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와 컴퓨터는 해야 밥을 먹고 산다며 열심히 학원비와 과외비를 벌었다.
I'm fine. Thank you. 를 말하면 엄마는 좋아했다.
작은 도시에 사는 딸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길 바랐던 엄마는 오로지 그 희망으로 사는 듯했다.
한 번은 가게에 외국인들이 온 적이 있는데 사기를 당할 뻔했다면서 영어는 꼭 배워야 한다고 엄마는
다짐하듯 말했다.
"두 인간들이 아주 사람 혼을 빼놓는데 이 엄마가 누구니, 미국 말은 못 해도 촉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진짜 사기당할 뻔했다니까. 주나 네가 사는 세상은 영어는 꼭 해야 해. 이번에 아주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우리가 good이고 fine 해야 세상에 Thank you를 외치고 살 수 있다면서 엄마는 주나에게 다시 한번 약속을 꼭 받았다. 가게 옆 약국 이모처럼 많이 배우고 꼭 전문직을 가져야 살기 편하다고 하면서. 그러려면 영어를,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주나는 지금은 자신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그걸 몰랐다. 엄마 말이 딱히 틀리지도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약국 이모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긴 웨이브 머리를 넘기며 사는 게 좋아 보이기도 했다. 엄마처럼 예쁜 옷을 입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주나는 그랬다. 그냥 다 괜찮았다.
세상 모든 면이 다면체라면 주나는 그 모든 것을 다 좋게 보는 아이였다.
어느 한쪽이라도 여상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면 주나의 삶은 좀 달랐을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주나는 좋게 말하면 배려심 있고 다정한 긍정주의자였고, 나쁘게 말하면 자존감 낮은 조용한 아이였다. good이고 fine 하기 전에 먼저 Thank you라고 말해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잘하진 못해도 영어를 좋아했던 주나는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엄마는 만족했다. 당신과 다른 삶이라서.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안정된 직업이라서.
장사를 하든 직장을 다니든 만족은 없을 테니까.
그저 딸이 전문직 여성이 되어서 좋다고 했다.
하얀 가운은 아니지만 정장을 입었고, 한 달에 한 번 보부상이 되어 새벽 시장을 누비지 않아도 되는 딸이라 안심이라고 했다.
그 밤 엄마는 서울로 출발하기 전 늘 치킨을 시켜주고 가곤 했다.
딸의 밤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날 학교를 다녀온 딸이 자신을 가게에서 만날 테지만 어둠이 찾아온 그 시간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좋아하는 치킨을 꼭 손에 쥐어주고 버스를 타러 갔다.
이제 엄마는 밤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지 않는다.
지금은 I'm fine 하기 때문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옷가방을 메지 않아도 good이기 때문이다.
딸이 미국말을 하기 때문이다.